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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 사망은 지휘관 책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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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기도 양주군 지방도로에서 여중생 두명을 치어 숨지게 한 미군 무한궤도 차량 관제병과 운전병이 군사재판에서 무죄 평결을 받은 가운데 당시 사고 차량 바로 앞에서 다른 차량을 운전했던 미군 병사가 지휘관에게 사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 13일 사고 차량 앞에서 M113 무한궤도 차량을 운전했던 조슈아 레이 상병은 지난 22일자 성조지(Stars and Stripes) 14면에 실린 기고문에서 "상급자들이 안전문제를 외면했으며 책임질 사람이 있다면 관제병과 운전병이 아닌 지휘관"이라고 주장했다. 성조지는 해외에서 복무 중인 미군을 위해 미국 국방부가 발행을 승인한 일간신문이다.

레이 상병은 "이같은 비극적인 사고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군당국의 시각에서는 잘못된 것일지 모르겠지만 바로 앞에서 다른 차량을 운전했던 사람으로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고 글을 시작한 뒤 ▶넓은 문산 우회도로 대신 좁은 양주군 지방도로를 이용했으며▶2박3일간 5시간밖에 수면을 취하지 못했던 것을 사고 원인으로 꼽으면서 "이런 문제를 사고 당일 아침 지휘관에게 제기했으나 묵살됐다"고 주장했다.

◇넓은 도로 대신 좁은 도로 이용=레이 상병은 "부대가 위치한 파주에서 훈련장까지 가려면 양주군 지방도로가 지나치게 좁기 때문에 도로폭이 넓은 문산 우회도로를 택하도록 돼 있다"며 "양주군 도로에서 사고가 난 것은 군 차량이 적절치 않은 도로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농민과 아이들이 빈번히 통행하는 양주군 도로를 군 차량들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보행자들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국 근무를 마치고 현재 미국 워싱턴주 포트 루이스에서 복무 중인 레이 상병은 "만일 이곳 포트 루이스 인근 마을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면 해당 지휘관은 장교가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문제에 직면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면 부족=레이 상병은 "사고 차량 대열의 거의 모든 운전병이 사고 전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고 전 2박3일 동안 모두 5시간을 잤다. 나뿐만 아니라 돌아가면서 보초를 섰던 다른 운전병들도 역시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채 이날 운전을 했다"고 썼다.

◇브래들리 장갑차 대열=레이 상병은 폭이 넓은 무한궤도 차량 대열이 마주오던 브래들리 장갑차 대열을 만난 것을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원래 브래들리 장갑차 대열은 사고 차량 대열과 마주쳐 교행하는 게 아니라 두 대열이 처음부터 합류해 한 방향으로 진행했어야 했다"며 좁은 도로에서 예상치 않게 두 차량 대열이 교행하게 된 것을 문제삼았다.

◇지휘관 신문하지 못한 재판=레이 상병의 이같은 주장은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있었던 사고 차량 관제병 니노 병장과 운전병 워커 병장에 대한 군사재판에서 일부 확인됐다.

워커 병장의 변호인 가이 워맥 변호사는 지난 21일 변론에서 "좁은 도로에서 브래들리 장갑차 대열과 교행한다는 사전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으며 통신기기 주파수도 맞추지 않고 목적지도 모른 채 이동했다"며 운전병의 책임이 아닌 지휘관 책임을 거론했다.

지난 22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미 육군수사대 수사관 루이스 클리벡도 "누가 기소돼야 한다고 제안했는가"라는 변호인의 질문에 "차량 대열의 책임자인 메이슨 대위"라고 답했으며, 분대장 그렌디네티 하사는 "사병들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중대장에게 무한궤도 차량들을 트레일러로 옮길 것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두 재판의 배심원단은 각각 평결에 앞서 중대장 메이슨 대위가 증인으로 출석해주도록 재판부에 요청했으나 판사인 에드워드 오브라이언 중령은 "메이슨 대위는 요구에 응할 수 없는 상태(unavailable)"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군 관계자는 "니노 병장과 워커 병장에 대한 재판은 종결됐지만 중대장을 추가 기소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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