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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단일화 이후의 정치과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12월 대선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 간의 양강(兩强) 대결구도로 압축됐다. 어느 쪽이 승리하든 정책을 바탕으로 경쟁하는 정치가 자리잡을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정치발전의 기대를 높였다는 점에서 이 새로운 상황은 매우 다행스럽다.

그러나 여기에는 합리적 보수와 건전한 진보가 경쟁 속에 조화를 이뤄간다는, 아니 보수·진보를 넘어 국민을 위한다는 각오가 전제돼야 한다. 이 원칙이 깨진다면 보혁 이념의 가파른 대치나 심화시킬지 모른다. 오로지 이기기 위해 정체성마저 저버린 채 투쟁에 나선다면 이미 정치가 아니다.

우리가 盧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간 단일화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盧후보 스스로 커나온 길과 정책이 다르므로 鄭후보와의 단일화는 안된다고 공언했듯이 명분이 닿지 않았다. 또 방법론으로 택한 여론조사 역시 전문기관은 물론 盧후보 자신마저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던 변칙이다. 결국 당 내부의 비판으로 의미가 다소 퇴색했다지만 그래도 국민경선을 통해 후보가 된 정치인으로서 명분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는 단일화의 한계로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같은 흠결 극복을 위해서라도 盧후보는 공조를 약속한 鄭의원과의 정책 조율 등 이질성 최소화를 위한 노력을 우선해야 한다. 정치적 지향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 현상은 구호로 가려지는 게 아니다. '낡은 정치 대 새 정치'를 외치는 盧후보지만 어차피 부패·편중인사 등 낡은 정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DJ정권 계승자로서의 위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는 남은 과제다. 동질성 확보와 실정(失政)에 대한 자성 등으로 李후보와의 차별화를 시도해야 한다. 대선은 국민에게 비전을 심는 축제다. 이 자리를 비방과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진흙탕이 되게 해선 안된다. 표얻기에 혈안이 돼 지역감정의 상처나 들쑤셔서는 안된다. 李·盧후보 누구라 할 것 없이 정도를 걸으며 페어플레이에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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