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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지용, 가명 박창현으로 거제포로생활"

중앙일보

입력

한국전쟁 때 납북된 뒤 사망한 것으로만 알려진 시인 정지용(1902-?)이 박창현(朴昌鉉)이라는 가명으로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생활했음을 유력하게 입증하는 자료가 발굴됐다.

시사잡지'월간중앙'은 이런 내용을 비롯해 그의 북행(北行) 행적을 추적한 1954년 시사종합월간지 '실화'(實話) 6월호 탐사보도인 '본지 독점-포로되었던 시인 정지용, 그의 이북행 비화'를 발굴했다고 18일 밝혔다. 관련기사는 새로 발매된 월간중앙 2월호에 실렸다.

당시 탐사보도 분야에서 필명이 높던 김태운(金泰雲)이 작성한 '실화'의 기사에 따르면, 지용은 해방공간에 좌파 문학가동맹이 결성한 문인단체의 문화공작대 요원 신분으로 1950년 7월, 낙동강 전투에 강제 투입됐다가 같은 해 8월 왜관 인근 '트리오트리' 전투에서 인민군이 패퇴하면서 유엔군에 생포됐다.

그 뒤 지용은 군속 노무자 박창현이라는 가명으로 거제포로수용소로 이송돼 그곳에서 소제부를 거쳐 취사반장생활을 하면서 술과 번민으로 허송세월했고, 북행이냐 남쪽에 잔류냐의 귀로에서 고뇌하다가 자기가 지은 죗값을 치를 방도가 없다고 판단해 북쪽을 선택했다는 내용 등이 잡지에 수록돼 있다

월간중앙은 당시 북행을 택한 영문자 포로 명단에는 1933년생 강원도 출신 'Pak Chang Hyun'(포로번호 0098017)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나 그가 정지용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지만 이번 자료 발굴로 정지용일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

이런 내용은 시인 모윤숙이 당시 정지용을 찾기 위해 거제도포로수용소를 뒤지고 다녔다는 얘기와 맞물려 새로운 추론을 가능케 하고 있다고 잡지는 덧붙였다. 정지용이라는 본명 대신 박창현이라는 가명으로 포로생활을 했기에 모윤숙은 끝내 지용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탐사보도 작성자인 김태운은 이런 보도내용이 "시인 이활과 반공포로 김동식의 증언을 통해 글을 완성"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태운은 경향신문 기자 출신으로 당시 탐사보도로 필명을 날렸다고 하며 이 기사를 수록한 '실화'는 당시 최고 월간지로 꼽히는 '신태양' 자매지였다.

디지털뉴스센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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