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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란 상념 차단하는 도구…정신의 빛을 성취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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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호 08면

1. 율곡의 입산(入山)을 옹호하는 논리는 다양했다. “불교 또한 ‘마음의 수련(心學)’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으냐”는 온건한 변명에서부터, 우암 송시열의 허를 찌르는 역습도 있었다. “(율곡은) 10살쯤에 유교의 경서를 모두 꿰뚫고 나서는 왈, ‘성인(聖人)의 도(道)가 어째 이것뿐이냐’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불교와 노장, 그리고 제자백가서를 범람(泛覽)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능엄경』을 가장 좋아했는데, 안으로는 심성의 극치를 파고들고, 밖으로는 천지의 광활함을 담고 있어서였습니다. 율곡 같은 천재(高明)가 아니라면 코흘리개 나이에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한형조 교수의 교과서 밖 조선 유학 : 율곡의 성학집요 <13> - 율곡이 금강산에서 하산한 이유

천재의 ‘넘치는 지식욕’이 불교를 넘나들게 했다? 그래도 그렇지, 10살 무렵에 유교 경전을 달통하는 일이 가능할까. 세 살 때 읊은 파주 ‘화석정’을 보면 이 엉뚱한 변호가 혹, 과장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연막 하에서 송시열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율곡이 불교에 ‘종교적으로’ 혹하지는 않았다는 것, 그거 하나다.

2. 진실은 어디 있을까. 어머니의 죽음이 준 실존적 충격이 컸던 것은 틀림없다. 그의 나이 16세, 한창 예민하고 방황할 사춘기 아닌가. 동년배 최립에게 율곡은 “도학(道學)과 출세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던 중 어머니의 죽음을 만났고, 옛 사람들의 글을 끼적거리며 세월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나중 선조에게 올린 글은 더욱 분명하다. “자상한 어머니를 여의고,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以妄塞悲) 불교에 탐닉했습니다. 점차 거기 젖어 들고 미혹은 깊어져, ‘그만 본심을 잃고(因昧本心)’ 심산에 들어가 선문(禪門)에 종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보매 송시열의 변호와는 달리 율곡의 불교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의 경도를 넘어서 있었다.

그는 실제 몇 년간 ‘화두’를 진지하게 붙들고 수련했다.
“내가 어려 소싯적에 선가(禪家)의 돈오법(頓悟法)이 도에 들어서는 첩경이자 신기라고 여겨, (조주선사의) ‘만상이 하나로 돌아간다면, 그 하나는 어디로 가나’를 화두로 삼고 수년 동안 생각했지만 결국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돌이켜 반성해보고서 그게 길이 아님을 알았다.(嘗語學者曰, 吾少時, 妄意禪家頓悟法, 於入道甚捷而妙, 以萬象歸一, 一歸何處爲話頭, 數年思之, 竟未得悟. 反以求之, 乃知其非眞也.)”

3. 이 각성과 더불어 그는 1년 남짓의 금강산 유력을 마치고 하산한다. 그사이에 무엇이 일어났는지 그는 본격적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몇몇 단편적 자료만 있다. 선사들과 수작한 십여 수의 시, 금강산에서 노승과 나눈 짧은 대화, 그리고 지금 『성학집요』안의 ‘이단’편이 그것이다. 율곡은 불교의 마음(心性) 훈련의 가치를 인정했다. 그것은 ‘상념(想念)의 에포케’라고 불릴 만한 것이다.

“산문에 들어간 뒤 견고한 계(戒)와 정(定)으로 침식을 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홀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불교는 다만 증감상(增減想)을 짓지 않도록 유의한다.’ 무슨 말인가. 그 훈련은 무슨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이 마음이 달리는 길을 차단하고, 정신을 집중(凝聚)해 고요의 극치에서 스파크될 정신의 투명함과 빛(靜極虛明)을 성취하고자 할 뿐이다.(因入山門, 戒定堅固, 至忘寢食, 久之忽思, 以爲佛氏戒其徒勿作增減想者, 何意也. 蓋其學無他奇妙, 只欲其截斷此心走作之路, 凝聚精神, 以造靜極虛明之域.)” (『栗谷全書』‘行狀’)

율곡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 화두(話頭)가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화두란 다만 상념을 차단하는 도구라는 것. 이 비밀이 미리 새 나가면, 즉 “내부에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無意味話頭)”는 것을 알면, 김이 빠져 수련에 정진하지 않을 우려가 있어 화두의 해석이나 분석을 금하는 것이라고 했다.

4. 율곡 또한 수기(修己) 프로젝트에서 지나간 상황이 남긴 의지와 상념들의 ‘뿌연 먼지들(浮念)’을 제거하는 것의 중요성을 극구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율곡은 왜 굳이 불교에 이단(異端)이라는 레터르를 붙였을까. “윤회응보(輪回應報)로 사람들을 유혹 겁박해 불당(佛堂)에 공봉(供奉)을 드리게 한다”는 종교적 판단은 논외로 치자.

“불교는 심성(心性)을 치밀하게 논하는데, 이(理)를 심(心)으로 오해해 심(心)이 만법(萬法)의 근본이라고 했다. 심(心)을 또 성(性)으로 오해해 성(性)을 견문작용(見聞作用)이라고 했다. 적멸(寂滅)을 종(宗)으로 해, 천지만물(天地萬物)을 환망(幻妄)으로 알고, 출세(出世)를 도(道)로 알며, 병이인륜(秉彛人倫)을 질곡(桎梏)이라고 여겼다.(其精者則極論心性, 而認理爲心, 以心爲萬法之本, 認心爲性, 以性爲見聞作用, 以寂滅爲宗, 以天地萬物爲幻妄, 以出世爲道, 以秉<5F5D>人倫爲桎梏.)”

읽기에 영 암호 같을 것이다. 한마디로 율곡이 지적한 불교의 핵심 문제는 ‘객관성’이다. 예컨대 불교는 지금 의도적 판단과 인위적 노력을 거부하고 ‘임정직행(任情直行)’을 권장하는데, 그 ‘주관적 자유(猖狂自恣)’를 무제한 허용해도 좋은가? 삶이란 상황을 바르게 이해하고, 행동을 적절히 선택하는 과정이 아니던가.율곡의 의중을 번역하면 이렇다. “마음 내부의 불순물을 정화하는 심학(心學)은 시작이지 끝이 아닌바, 객관의 척도를 향한 이학(理學) 없이 학문은 완성되지 않는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고전한학과 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주희에서 정약용으로』『조선유학의 거장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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