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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요리 진수 한국서'특별 과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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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면

"프랑스 요리의 기본은 소스입니다.손놀림이 조금만 늦어도 소스가 엉망이 됩니다. 거품기로 8자를 그리며 빨리 저으세요. 빨리 빨리."

지난 18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청파동 숙명여대 사회교육원 6층에 있는 프랑스 요리학교'르 코르동 블루(Le Cordon Bleu)'한국 분교의 실습시간. 2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수강생 16명이 현지에서 파견된 프랑스인 조리장 마르크 샬로팽이 시키는대로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래도 샬로팽은 성이 안차는 모양이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어설픈 한국말까지 동원해 계속 "빨리 빨리"를 주문한다. 통역을 맡은 한국인 조교까지 시범을 보이며 덩달아 분주하다.

"정통요리를 배우기 위해 파리의 르 코르동 블루 본교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었죠. 그런데 한국에 분교가 생긴다기에 주저앉았는데 아주 잘 한 일 같아요.교육 자재나 시설, 가르치는 현지 조리장들의 자질 등 어느 하나 나무랄 것이 없어요."

1기 수강생 중 한 사람인 연예인 진미령씨의 말이다. 이날 진씨는 재료를 준비하면서 왼쪽 엄지 손가락을 칼에 벴다. 소스를 만들 땐 어눌한 손놀림으로 샬로팽에게 몇 차례 지적도 받았지만 얼굴 표정은 무척 밝다. 다른 수강생들도 환한 모습으로 진지하게 실습에 참여하고 있다. 적당히 딴청을 피우거나 왔다갔다하는 수강생은 찾아 볼 수 없다.

"이 곳에서 수강하는 분들은 요리에 대해 각자 확실한 신념을 갖고 있어요. 단순히 취미생활이나 자격증·취업을 목적으로 나오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숙련된 조리사는 한단계 앞선 선진 기술 습득을 위해, 레스토랑 경영자는 보다 나은 맛과 서비스를 위해,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이론과 실습을 겸비한 교사로 거듭나기 위해 수강신청을 했다고 해요."

마케팅 매니저 이지현씨의 설명이다.

"수강 분위기가 프랑스 본원 못지 않게 정열적입니다. 프랑스 문화에 대한 욕구도 만만치 않고요. 하루에 한마디씩 불어를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샬로팽이 옆에서 거들었다.

1백7년 전통의 르 코르동 블루는 세계 최고로 꼽히는 요리 학교. 현재 12개국에 20개 분교를 둔 다국적 요리학교로 성장했다.

숙명여대와 손을 잡고 문을 연 한국 분교는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 모든 분교는 파리 본교의 시스템 그대로 운영된다. 어느 곳에서 배웠든 동등한 자격을 인정하기 때문에 20개 분교 어디로도 전학·편입이 가능하다.

한국 분교는 20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지만 지난 10월부터 1기생 1백27명을 맞아 들여 교육 중이다. 파리 본교 커리큘럼을 그대로 들여온 것은 물론이다. 정통 프랑스 요리 코스와 제과·제빵 등 3개 코스를 모두 프랑스인 조리장이 진행한다. 프랑스 요리의 경우엔 초·중·고·상급 등 4단계로 나눠지는데 교육기간은 단계별로 3개월(일주일에 6시간씩 두 차례)이 걸린다. 한단계 수강료는 6백30만원, 1년동안 4단계를 마치려면 모두 2천4백여만원이 든다. 비용이 엄청나지만 돈이 있다고 모든 과정을 통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단계마다 엄정한 평가를 거쳐 실력이 부족하면 다음 과정으로 승급이 안된다.

파리에서 이미 요리과정 4단계를 마치고 숙명여대에서 다시 제과 과정을 시작한 이인자씨는 "수강료는 파리와 거의 동일한 수준이고 교육 내용도 파리와 다를 것이 없다"며 "그러나 시설이 훨씬 좋고 한국인 통역도 있어 처음 프랑스 요리를 접하는데는 이쪽이 훨씬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언어에 자신이 없으면 이 곳에서 요리를 배우며 불어도 공부한 뒤 상급과정을 파리에서 배우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이날 실습 요리는 프랑스 대구찜. 조리장이 직접 만들어가며 설명하는 수업을 오전에 3시간 동안 받았지만 오후 3시간동안 수강생들이 만든 음식은 대부분 '낙제점'. 그래도 각자 자신이 만든 대구찜요리를 챙겨서 실습실을 나섰다.

유지상 기자

yj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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