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압사 미군의 '무죄 평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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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 8군사령부 군사법원 배심원단이 동두천 두 여중생 압사사고를 낸 미군 무한궤도 차량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 피고인에게 무죄 평결한 것은 정말 납득하기 어렵다. 아직 남아 있는 운전병 마크 워커 피고인에 대한 처벌도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지만 무고한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를 저질러 놓고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결과가 됐으니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사건에 대한 미 군사법원의 무죄 종결은 예견됐던 일이다.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에 따라 우리나라가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원 현역 미군으로 구성된 7명의 배심원단이 공무수행 중 사고를 낸 자국 병사에게 유죄 평결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이 사건은 사고 자체도 문제지만 처리 과정에서 미군 측 무성의에다 양국의 문화 의식 차이 때문에 부작용이 증폭됐다. 시민들의 반미 감정 악화 양상에다 미군의 영외 출입 급감 등 심각한 상황도 있었다. 겨우 위기를 넘길 시점에 무죄 평결이란 악재가 터졌으니 국민의 반미 감정이 한층 고조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미군 측의 성의있는 사과와 보상, 재판권 이양 등을 요구해온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과 대응은 더욱 과격해질 우려가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처음 미 군사법원의 재판과정이 공개되고 취재가 허용된 것은 작은 진전이다. 비록 형식적이었지만 미군 병사 두 명이 한국 검찰에 출두한 것도 의미가 있다. 뜻을 이루지 못했어도 법무부가 미군의 공무 중 사고에 대해 처음으로 재판 관할권 이양을 요구한 것도 소득이다.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SOFA의 불균형 해소다.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불공정한 규정으로는 또 다른 '무죄 평결'이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혈맹의 관계가 계속 유지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양국의 이익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미국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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