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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가족 됐다가 중국에 팔리고 이번엔 인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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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인도의 자동차 제조업체인 마힌드라&마힌드라(이하 마힌드라)가 쌍용자동차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인수가 확정될 경우 개인회사로 출발한 쌍용차는 쌍용·대우 그룹과 중국 상하이기차공업집단공사(상하이차)에 이어 또다시 새 주인을 맞게 된다.

쌍용차와 매각주간사는 최종 입찰제안서를 낸 3개사(마힌드라·루이아·영안모자)에 대한 종합평가 결과 마힌드라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최종 선정했다고 12일 밝혔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트랙터 등 농기계를 주로 생산하는 마힌드라는 인도의 거대 기업 중 하나인 마힌드라 그룹 소속이다.

쌍용차와 매각 주간사는 마힌드라로부터 입찰대금의 5% 수준인 입찰이행 보증금을 받은 뒤, 이달 말까지 양해각서를 체결할 방침이다. 일정이 순조로우면 다음달 확인실사, 10월 인수대금 확정을 거쳐 11월 본계약이 체결된다.

설립 56년을 맞은 쌍용차는 그간 기구하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많은 곡절을 겪었다. 이 회사를 인수한 기업이 연속으로 무너지거나 다시 매물로 내놨다. 1954년 ‘하동환 자동차제작소’로 출범한 쌍용차는 국내 최초로 대형 버스를 만든 회사다. 77년 동아자동차로 이름을 바꾼 뒤 당시 ‘지프 차’로 불리던 SUV 생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쌍용차는 86년 쌍용그룹이 경영권을 인수한 뒤 88년 현재의 이름이 됐다. 4륜 구동차 ‘코란도 훼미리’ 등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 SUV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외환위기로 쌍용그룹이 흔들리면서 98년 대우그룹으로 팔려나갔다. 대우그룹마저 무너지면서 2000년 4월엔 채권단의 손에 넘어갔다. 쌍용차는 코란도·렉스턴 등 주력 차종을 앞세워 회생에 나섰다. 회사 사정이 나아지자 채권단은 쌍용차를 매물로 내놨다. 2003년 말 중국 란싱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정하기도 했다. 이듬해 란싱과의 협상이 깨지면서 예비 순위였던 중국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품에 안았다.

그러나 새 주인과도 궁합이 맞지 않았다. 후속 모델마다 실패가 이어졌다. 인수 때부터 기술만 가져가고 쌍용차를 버리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던 상하이차는 결국 4년여 만에 쌍용차에서 손을 뗐다. 지난해 1월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주식 매각에 들어간 것이다. 이어 혹독한 구조조정이 시작됐고, 노동조합은 지난해 여름 77일간의 극렬한 파업으로 맞섰다. 회사가 되살아날 희망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마힌드라, 신차종 투자 적극적 … 시너지 기대

미 시장 진입 위해 엔진 관심

외신 “인수대금 5600억 써내”

하지만 지난해 8월 노사협상이 타결되면서 상황이 조금씩 달라졌다. 쌍용차 노조는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법원은 지난해 12월 계획안을 강제 인가했고, 다시 새 주인 찾기가 시작됐다.

◆마힌드라의 구상은=이번 쌍용차 매각 과정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곳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다. 시장에서도 르노-닛산의 인수 가능성을 가장 높게 봤다. 하지만 르노-닛산은 최종 인수제안서를 내지 않았다. 예상보다 많은 액수를 써야 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는 분석이 많다. 쌍용차의 부채는 7200억원 수준이다. 일시불로 갚아도 6000억원은 내야 한다.

결국 우선협상권은 마힌드라에 돌아갔다. 마힌드라는 실사 과정에서 파완 고엔카 사장 등 20여 명의 대규모 실사단을 파견하면서 쌍용차 인수에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일부 외신은 마힌드라가 4억8000만 달러(약 5600억원)를 써냈다고 보도하고 있다. 쌍용차의 부채 규모에 가장 근접했다는 얘기다.

1945년 설립된 마힌드라는 인도 SUV 시장의 강자다. 세계적인 트랙터 제조사이기도 하다. 3월 끝난 2010 회계연도에 한 해 전보다 38%나 늘어난 2060억 루피(약 5조2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근에는 르노와 합작했던 회사의 르노 쪽 지분을 사들였고, 인도의 전기차 업체인 레바 일렉트릭도 인수했다. 빠르게 덩치를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이 회사가 속한 마힌드라 그룹은 종업원 10만 명이 넘는 거대 기업이다.

마힌드라는 쌍용차가 가진 엔진 기술에 관심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마힌드라는 디젤 SUV와 픽업트럭을 미국 시장에 팔 계획이지만, 안전 규격 등의 문제로 지연되고 있다. 미국 안전테스트를 통과하고, 유럽의 배출가스 규제를 만족시킬 수 있는 쌍용차의 디젤 엔진을 탐내는 이유다.

◆쌍용차 부활 가능할까=쌍용차의 최대 관심사는 마힌드라의 장기적인 투자를 통한 기업 회생이다. 쌍용차는 올 들어 지난달까지 전년 동기 대비 235% 급증한 4만3881대의 차를 팔았다. 6월에는 러시아에 2017년까지 16만 대가 넘는 차를 수출하기로 하는 계약도 했다. 이달 말까지 양산 준비를 마칠 계획인 신차 ‘코란도C’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쌍용차 관계자는 “대주주가 있어야 앞으로의 제품 출시·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술력이 다소 떨어지는 마힌드라가 우선협상대상자가 돼 상하이차 때처럼 기술유출 논란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분석에 대해선 “이미 한 차례 경험을 해봤는데 법원·채권단이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쌍용차 노조 이규백 교육선전실장은 “고용 승계와 실질적 투자가 이뤄지고, 정부·지자체가 이를 보증해 준다면 (어떤 업체가 인수하든)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판단은 엇갈린다. 가톨릭대 김기찬(경영학) 교수는 “신차종 투자에 그나마 가장 적극적인 곳이 선정됐다고 본다”며 “마힌드라가 전기차 업체를 인수했기 때문에 쌍용차의 미래형 자동차 생산에도 시너지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산업연구원 이항구 주력산업팀장은 “마힌드라가 르노와의 합작법인 지분 인수에 이어 인도 전기차 업체, 쌍용차까지 인수하면 재원 배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쌍용차가 만든 부분품을 인도로 가져가 값싼 노동력으로 조립하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선하·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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