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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2. 안과 바깥 <7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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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부정선거로 인해 정부의 각료들이 줄줄이 사임하고 이기붕이 사임했으며 대학교수단이 시위에 나서자 전 서울시의 시민들이 밤새도록 곳곳에서 시위를 계속했다. 이승만이 하야 성명을 냈고, 이기붕 일가가 이승만의 양아들로 입적시켰던 아들 이강석을 앞세워 모두 자살했다. 그리고 이승만은 대통령 자리를 내놓고는 한 달이 못되어 하와이로 망명했다.

나는 서울 시청 앞에서의 종길이의 죽음과 시민들의 시위가 내 일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나중에 다음과 같이 자기 세대를 규정하게 된다.

냉전 이래 반공과 친미를 기본이념으로 내세운 남한 정권은 몇 차례의 고비를 넘기면서 군사독재로 이어진다. 최초의 항쟁은 1960년 4월에 있었던 '학생혁명'이었고 나는 구경꾼에서 시위대로 여기에 참여했다. 어려서는 어른들의 등 뒤에 숨어서 동족이 서로 죽이고 죽는 참경을 보고 자랐으며 청소년이 되어서는 기성 질서와 정면으로 부딪쳤던 첫 세대가 된 것이다. 우리는 '4월 세대' 또는 다른 말로는 '한글 세대'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것은 식민지에서 해방된 뒤에 모국어로 교육받은 첫 세대라는 뜻이었다. 따라서 이 세대는 근대 이래 보편적 가치로서의 민주주의와 냉전에 의한 민족분단을 극복하는 일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알고 성장한 사람들을 의미했다.

긴 휴교 기간에 우리는 종길이의 유고 시편들을 추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의 유고 시집 '봄, 밤, 별'이 편집되어 나왔다. 그림쟁이 성진이가 표지를 그렸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의 자청 해설은 이러했다.

-이 뼈처럼 마른 손은 죽은 시인의 것이다. 그 위에 일그러진 달은 이미지와 이상의 세계, 그걸 잡으려고 뻗친 거야.

어쨌든 안종길의 유고 시집은 마치 새로운 세계를 마쳐 보지 못한 채 옥사한 윤동주의 시 세계처럼 맑고 아름다웠다. 아마 윤동주의 자화상 같은 시구들도 있었다. 그리고 하이네의 시편들과도 닮아 보였다. 풋열매였지만 종길이는 이후에 혁명과 함께 소년들에게 오래 기억되었다. 일종의 현대성이라 하는 것들도 식민지 문화의 변종으로 어중간했고 분단과 전쟁 이후에 한국 문단은 그 활력을 잃고 있었다. 내 친구들은 그 무렵에 김수영을 발견하여 열심히 읽었다. 독재가 걷히자 막혀 있던 출판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김지하는 자신을 포함하여 이 무렵의 학생 세대들을 '말똥종이 세대'라고 자조적으로 부른 적이 있다. 해방 이후 전쟁 전에 나온 책들이 물자 곤란으로 모두 마분지에 인쇄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헌 책방에도 이른바 해방공간에서 나왔던 진보적인 번역서와 월북인사들의 책들이 버젓이 나와서 돌아다녔다. 민주사회의 시장은 이러해야 한다고 상득이는 어른처럼 말했다. 그러나 온 사회는 아직도 암울한 가난이 뒤덮여 있었다. 여름방학이 되자 대학생들은 일제 시대처럼 농촌 봉사대에 참가하는 게 풍조가 되었는데 고등학생들 사이에는 '무전여행'을 떠나는 게 유행이었다. 그러나 역시 어려운 시절이라 각 지방에서 그 부근을 돌아다니는 정도였고 전국을 휘돌아 다니는 애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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