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안 빌리고… 가계대출은 점점 막히고 "총재님 돈 굴릴 데가 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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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은행들이 돈은 넘쳐나는데 마땅히 굴릴 곳이 없어 고민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현금을 쌓아놓고 좀처럼 빌리려 하지 않는 데다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정책으로 개인들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5일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주최한 금융협의회에 참석한 10개 은행장들은 이런 애로사항을 토로했다. 은행장들은 정부 정책과 각 은행들의 노력으로 이달부터 가계대출의 증가세가 꺾일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가계대출 말고는 달리 돈을 굴릴 만한 데가 없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 대출이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은행 간 대출 경쟁이 치열해 남는 게 별로 없고 자칫 경기가 악화할 경우 부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달 은행 대출은 9월에 비해 12조원이 늘어났는데 이 중 가계대출 증가액은 절반이 넘는 6조1천억원에 달했고 중소기업 대출도 4조9천억원이 증가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신용이 좋은 대기업 대출은 9천억원이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금리를 낮춰 예금을 덜 받는 등 수익성 위주 전략을 펴고 있다. 지난 9월 은행 예금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연 3%대로 떨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예금이 너무 많이 몰리지 않도록 금리를 다른 은행보다 0.2%포인트 낮게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또 소규모 자영업자를 겨냥한 '소호(SOHO) 금융팀'을 만드는 등 새 대출시장 개척에 부심하고 있다.

보험사들도 비슷한 형편이다. 보험사들은 아직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가계대출에 주력하고 있다.

22개 생명보험사의 가계대출은 지난 1년간 5조7천억원(22%) 늘었다. 가계대출이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9월 말에 74%로 1년 전보다 7%포인트 높아졌다.

보험사들은 또 미국 국채 등 해외 유가증권 투자를 늘리고 있다. 생보사의 해외 유가증권 투자 규모는 지난 9월 말 현재 7조6천억원으로 1년 전보다 2조2천억원이 늘어났다. 특히 삼성생명의 해외 유가증권 투자 규모는 9월 말 현재 5조4천억원으로 1년 전보다 1조4천억원 증가했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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