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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연어다" 들뜬 섬진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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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3일 경남과 전남을 양편에 두고 흐르는 섬진강의 광양시 다압면 중류에서 3백여명이 '연어 손님'환영 행사를 가졌다.

쌀쌀한 초겨울 날씨에도 광주·전남 연어사랑 모임은 멀리 태평양을 둘러 4년 만에 돌아온 연어를 '집 나간 소가 돌아온 듯' 반갑게 맞았다.

"연어야! 너를 다시 만나니 무척 반갑다. 4년 전 어린 너를 보내고 얼마나 궁금했는지 모른다. 비록 많은 친구가 함께 오지는 못했지만, 북태평양을 돌아 온갖 역경을 헤치고 힘차게 돌아온 걸 보니 신비스럽기만 하구나. "

광주 금호초등학교 이성현(12)군은 연어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감격해 했다.

이날 섬진강에 모인 사람 가운데 절반 이상이 초·중·고교생이었고, 가족끼리 온 경우가 많았다. 이현명(38·광주시 광산구 월곡동)씨는 "초등학생 아들·딸에게 강이 살아 숨쉬는 것을 보여주려고 데려왔다"며 "연어의 일생을 들여다보며 아이들과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 청소년 환경학교 학생 1백20명을 이끌고 온 김종수(43·전북 정읍공고 교사)씨는 "학생들이 책에서만 보던 연어를 직접 보면서 새삼 환경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 학생은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연어 치어를 섬진강에 직접 방류한 뒤 연어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자신의 꿈을 키워 왔다는 어린이도 있었다.

광주·전남 연어사랑 모임 최강은(41)집행위원장은 "자연과 환경을 생각하게 하는 산교육장이 됐다"며 "모천 회귀 본능이 연어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전남도 수산시험연구소는 연어 암컷을 가려내 직접 채란하기도 했다. 암컷이 2천∼3천개의 붉은 알을 낳고, 수컷이 그 주위로 하얀 액체를 내보내 새 생명체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 것이다.

수정란은 섬진강가 부화기에서 한달 정도 저항력을 키운 뒤 장성군 내수면시험장으로 옮겨져 자란다. 내수면시험장 측은 섬진강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연어 알 4만개 가량을 거둬 내년 1월께 3만2천여마리 치어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봤다.

섬진강에 연어가 나타난 것은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93년 다섯마리가 목격됐고 2000년까지 매년 가을 3∼8마리씩 보였다.

내수면시험장이 지난해 18마리를 포획했던 게 올해는 그 수가 급증했다. 섬진강에서 98년부터 매년 새끼를 방류했고, 이들이 성어가 돼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섬진강 연어 방류 및 회귀는 시민단체들의 노력 덕분이다.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와 우리농촌 살리기운동본부, 시민생활환경회의 회원 40여명은 97년 봄·가을 두차례에 걸쳐 비무장지대로 생태탐사를 갔었다. 이들은 연어를 처음 접하고, 섬진강에도 극소수지만 자생한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광주·전남 연어사랑 모임을 만들고, 이듬해 3월 국립수산진흥원 양양 내수면연구소에서 협조받은 연어 치어 30만마리를 전남도와 함께 광양시 다압면 섬진강에 풀어놓았다. 지난 3월까지 모두 2백35만마리를 방류했다.

지난 3월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남 장흥군 탐진강에 10만마리를 풀었다. 연어를 통해 자연스럽게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면서 어족자원을 확보하자는 취지에서다.

새끼 연어를 방류하면서 강 하류 하동포구에서 주민들이 실뱀장어를 잡기 위해 친 그물 때문에 바다로 나가지 못할까 가슴을 졸여야 했다. 또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을 설득, 섬진강 곳곳에 있는 수중보를 일부 뚫어 어도(魚道)를 만들어야 했다. 산란철에는 섬진강 어족보존회와 함께 불법 어로에 대한 감시활동을 벌였다. 임실·순창·구례·곡성·광양·하동 등 섬진강 수계 지자체들에 생태환경 보존의 중요성을 강조, 섬진강권 환경행정협의회를 만드는 데 한몫 하기도 했다.

전남도는 연어·은어 등에 대한 관심을 반영, 2005년까지 1백억원을 들여 섬진강 토산 어종 생태관을 짓기로 했다.

섬진강으로 돌아오는 연어의 수가 많아지면 자연과 환경을 주제로 한 지역축제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연어를 방류하는 3월께는 섬진강가에 매화·산수유가 활짝 피고, 연어가 돌아오는 11월에는 지리산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광주·전남 연어사랑 모임 오수성(55·전남대 교수)상임대표는 "연어가 돌아온다는 것은 강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연어가 더 많이 돌아올 수 있도록 강을 보호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양=천창환 기자

chuncw@joongang.co.kr

섬진강에 연어가 돌아왔다. 전남도 수산시험연구소가 채란(採卵)을 위해 지난달 말부터 지난 13일까지 섬진강에서 잡은 연어는 84마리에 이른다. 요즘도 하루 2∼3마리씩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게 목격되고 있다. 이달 말까지 1백마리는 넘어설 것 같다. 1998년 2월 섬진강에서 처음 방류한 새끼 연어들이 1만8천여㎞에 걸친 바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기 시작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섬진강은 산란을 위해 연어가 태어났던 모천(母川)으로 찾아오는 연어의 우리나라 회유경로상 최남단이다. 연어는 지금까지 주로 동해로 흐르는 강과 하천으로 돌아왔다. 남해로 이어지는 섬진강에서 다시 만난 연어는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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