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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사찰에 첨단장비 투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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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최첨단 기술이 동원된 '숨바꼭질'이 4년 만에 재연된다. 술래 역할의 유엔 무기사찰단이 찾아내야 하는 대상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을 밝혀 줄 핵심 증거다.

유엔 무기사찰단은 1991년 걸프전이 끝난 직후부터 98년 철수할 때까지 이라크 전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생화학무기나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갖고 있다는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유엔 사찰단은 이번엔 그 양상이 1백80도 달라질 것이라고 벼르고 있다. 90년대 후반에 이뤄진 디지털 기술의 혁신에 따라 사찰장비의 성능이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개선됐다는 점에서다.

대표적인 첨단장비는 휴대용 미생물 탐지기다. 탄저균 등 각종 세균무기를 찾아낼 수 있는 이 장비는 인체 지놈 분석에 쓰인 기술을 이용한 것으로 지난해 미국의 한 국영연구소가 개발했다. 세균 탐지능력도 훨씬 높아졌지만 더욱 획기적인 것은 가방에 넣어 휴대하게끔 소형·경량화됐다는 점이다.

4년 전까지는 사찰단이 여러 개의 표본을 채취한 뒤 이를 실험실까지 갖고 와서 분석해야만 했다. 검출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수일에서 수주일까지 걸렸지만 '한나'란 이름의 이 신형장비를 사용하면 20분이면 끝난다.

핵무기 사찰에 쓰이는 방사능 탐지장치 역시 특수부대원이 개인장비로 휴대할 수 있을 정도로 작아졌다. 의심스런 시설물이나 공사 흔적을 찾아낼 첩보위성의 카메라도 폭 60㎝ 정도까지 판독할 수 있을 만큼 해상도가 향상됐다.

사찰의 성패를 좌우할 기술은 지하 시설물 탐지다. 여기엔 지하탐지용 특수 레이더가 사용되지만 최근엔 자기장과 중력 변화를 측정해 지하 30m에 뚫린 구멍까지 찾아내는 장치가 개발됐다.

하지만 아무리 첨단 장비가 동원되더라도 '무'에서 '유'를 찾아내야 하는 사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제 사찰단의 일원으로 이라크를 15차례 방문했던 팀 매카시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결정적인 사찰 수단은 이라크 과학자들에 대한 면접조사"라면서 "핵무기나 생화학무기 개발에 관한 정보를 갖고 있을 과학자들과의 구술조사에서 그들의 거짓말을 짚어내 진실을 털어놓게 하는 기법을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

예영준 기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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