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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 언어능력 향상 위해 국어 발전 기본법 제정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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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며칠 전에 문화관광부 주관으로 '국어 발전 종합 계획 시안'에 대한 공청회가 국립국어연구원 강당에서 열렸다. 공청회에 참석한 토론자들은 한결같이 이제라도 정부에서 우리 말과 글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반가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말을 사용하는 국내외적인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국어 발전에 관한 한 교육 기관, 공공 기관, 출판 기관, 언론 기관은 항상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우선 교육 기관은 순수 학문만을 내세워 응용 국어학을 거부하고 있다. '국어 정서법'이나 '국어 규범론' 같은 실용 학문을 뒷전으로 몰고 순수 학문만을 고집하고 있다. 공공 기관의 공문서나 법률 용어는 국어 오용이 너무 많아 읽을 수가 없다. 표준어와 맞춤법, 어법을 잊은 지 오래고 직역투 문장을 마구 쓰고 있다. 언론 기관은 앞다투어 외국어와 외래어로 매일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가령 제목만 봐도 '재테크, 머니, 클릭, 레포츠, 포커스' 등 수없이 많다.

이 시대를 국어학자들은 '우리말 위기의 시대'라고 말한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우리말을 쓰지 못하게 하던 상황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 까닭은 특별히 드러내 놓고 우리말을 공부할 필요가 없는 언어 환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흔히 '신어'라고 부르는 말을 살펴보자. '노골드, 사이버깡, 이커머스, 스포츠룩'등과 같은 서구식 용어와 '묻지마 청약, 야타족, 막가파, 떴다방, 깜짝손님'등과 같은 용어가 매일 언론에 공개되고 있어도 우리 국민은 모두 무감각하다.

최근에는 '10002(많이), 넘행(너무해), 머시따(멋있다)'등과 같은 통신 언어가 범람해도 국민은 관심이 없다. 물론 이들 신어가 항상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족한 우리말 어휘를 풍부하게 하고 신기(新奇)한 용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시대가 우리말 '위기의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는 이를 잘 극복하여 전환의 계기로 삼아 우리말을 발전시키는 '기회의 시대'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이 위기의 시대인 일제 강점기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발표한 바가 있듯이, 지금에도 '국어 발전 기본법'(가칭)을 만들고 국립국어연구원의 위상을 국민의 대표 기관으로 격상하여 날로 병들어 가는 우리말을 살리는 길을 찾아야 한다.

문화관광부가 내놓은 '국어 발전 종합 계획 시안'을 보면 7년 동안 1천6백억원을 투자하여 우리나라를 '지식·정보·문화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좀 더 구체적이고 실천적 내용을 담아야 한다. 국민의 언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규범화나 표준화'만이 전부가 아니다. 학계, 출판계, 언론계, 교육계의 도움 없이는 국어 교육이나 순화 용어 보급 등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우선 시급한 것이 국어 연구 인력의 확충이다. 국립국어연구원의 연구 인력 20명으로는 그 어떤 일도 충실하게 해내기 어렵다. 북한의 언어학연구소 연구원이 70여명, 일본의 국립국어연구소 연구원도 70여명, 프랑스의 알리앙스프랑세즈 연구원은 1백여명이나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의 국어 사랑 정신일 것이다. 한쪽에서는 열심히 우리말을 갈고 닦는데 또 다른 쪽에서는 우리말을 망가뜨린다면 이런 계획도 한낱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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