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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이 장애친구 손발돼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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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경기도 수원시 청명고 1학년 12반.

매일 오전 7시20분쯤이면 누군가 한 명이 창가를 지킨다.

그가 "왔다"라고 외치면 서너명이 내려가 종훈(18)이의 휠체어를 함께 들고 2층 교실로 올라온다.

종훈이는 후천성 척추장애인이지만 학습능력에 문제가 없어 정상학생들과 같은 반에 배정됐다. 그러나 "불편한 게 없다"고 말한다. 급식을 갖다주고 수저도 씻어주며 손발 노릇을 해주는 친구들 때문이다.

여름방학 때 종훈이는 친구들과 과학전시회에 다녀왔다. 음악회도 갔다왔고 노래방과 PC방에도 가봤다. 그는 "친구들 덕에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 학교 3년 경렬(19)이는 미술·전산시간이면 1층의 '사랑반'(장애학생 특수반)에서 세웅이를 자기 교실(5층)로 데려온다. 체육시간엔 옷을 갈아입혀 축구나 태권도를 함께 한다. 세웅이는 정신지체장애인이다.

장애·비장애학생들이 어우러져 지내는 청명고에서는 흔한 일들이다. 청명고는 2000년 1월 "수원시내 고교 한 곳에 특수학급을 열어야 하는 데 응하는 학교가 없다"는 교육청의 말에 학년에 한 학급씩 특수반을 만들어 장애학생을 받기 시작했다.

그 뒤 1천5백여 비장애학생 모두가 28명 장애학생의 친구인 '사랑의 학교'가 됐다.

이동 수업으로 같이 공부하고 수화(手話)반을 비롯한 몇몇 동아리 활동도 함께 한다. 수련회 때는 장애학생이 학급대표로 장기자랑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들의 혼자 일어서려는 의지를 보면서 궂은 일을 좋고 맑게 바라보는 시각이 생겼다"는 1학년 승백군의 말마따나 이런 환경은 학생들의 봉사정신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에는 중증 장애아 11명을 돌보는 부부의 집을 전교생이 하루 열명씩 교대로 찾아 목욕시키고 밥을 먹여줬다. 올 들어서도 학급별로 한 달에 한두 번 고아원과 양로원을 찾는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전교생이 근처 노인복지시설에서 말벗·목욕 등의 봉사를 하기로 했다.

최정숙(58·여)교장은 "다른 사람과 나누는 법,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서 심성 교육이 절로 된다"면서 "학교폭력이나 왕따가 없어 정학을 받은 학생이 한 명도 없다"고 소개했다. 청명고는 13일 보건복지부로부터 국내 처음 사회복지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받았다.

복지부 문경태 사회복지정책실장은 "청명고의 운영 성과를 바탕으로 시·도에 한 곳씩 시범학교를 지정해 운영하고 필요하면 지원부서도 만들겠다"고 말했다.

수원=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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