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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예술>예술의 심장이 뛰면 과학의 두뇌도 반짝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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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4면

저명한 프랙탈 아티스트인 켄 켈러가 미국의 한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 때의 일이다. 세부구조가 전체구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프랙탈 패턴이 담긴 그의 그림을 보면서 한 신문기자가 물었다. "하나의 수학공식에서 이런 아름다운 패턴이 나온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지만,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그러자 켈러는 이렇게 대답했다.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의 그림 앞에서는 절대 그런 질문 마시오. 그 사람들이 들으면 죽었다가도 벌떡 일어날테니."

바실리 칸딘스키로 대표되는 20세기 초 추상화가들은 원이나 사각형과 같은 기하학적 도형들로 이뤄진 구성 작품을 그렸다. 세계가 결국 그런 간단한 도형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20세기 말, 우리는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도형이 '프랙탈'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켈러는 이 시대의 언어와 지식으로 자연을 그려내려고 했을 뿐, 우주의 본질에 다가서려는 마음은 20세기 초 추상화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예술가는 미적 표현을 통한 작품 활동으로 세상의 본질을 드러낸다. 과학자들은 명료한 수학적 표현으로 우주와 생명의 본질에 다가간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예술과 과학이 맞닿아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래서 불과 4백년 전 레오나르도 다빈치 시대만 하더라도 과학자는 곧 예술가였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예술과 과학은 2천5백년간 서로 창조적 영감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다. 광학과 기하학의 발전은 원근법의 등장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으며,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피 발명은 '영화'라는 예술을 탄생시켰다. 또 음향학의 발전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풍성한 오케스트라 연주는 맛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 예술이 과학에 미친 영향도 지대하다. 신에서 인간으로 관심을 돌린 르네상스 시대 화가들 덕분에 해부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고, 착시와 환영을 이용한 화가들의 그림은 요즘도 인지심리학자들에게 창조적인 연구주제를 제공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예술과 과학의 가장 행복한 만남은 시대정신을 창조하고 반영하는 데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공간이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는 상대적 개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고, 동 시대인이었던 피카소는 여러 관점에서 바라본 형상을 한 화폭에 담아냄으로써 동시성의 개념을 형상화했다.

20세기 초 모빌이나 키네틱 아트는 사물의 본질을 '운동'에서 파악한 물리학자들의 연구와 무관하지 않다. 결국 과학은 같은 시대 사람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예술가들은 그것을 창조적으로 해석해냄으로써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온 것이다.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면서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지만, 세잔은 기울어진 탁자 위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사과를 그림으로써 중력과 질량, 그리고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려 했다. 그는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그가 평생 먹을 수 있는 사과보다 더 많은 사과를 그렸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테크놀러지의 세기'를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예술가들은 21세기의 시대정신을 담아내기 위해 과연 '어떤 사과'를 그려낼 것인가? 비디오 시대에 백남준 선생이 등장했듯, 과학자들과 창조적 영감을 주고받을 21세기의 새로운 예술가들을 기대해 본다.

jsjeong@complex.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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