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때 입양된 사실 알아 노벨상 수상보다 더 충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노벨상 수상보다 더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대학시절 호적을 떼면서 부모님이 양부모란 사실을 알았던 때였다. 생모가 나를 낳은 직후 돌아가셨기 때문에 작은 아버지의 양자로 입적했던 것이다. 어릴 때 알았으면 매우 방황했을 텐데. 따뜻하게 키워주신 양부모님께 너무 감사한다"(10월 18일)

학사 출신의 평범한 샐러리맨이었으나 노벨화학상 수상으로 일약 세계적인 명사가 된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43·시마즈 제작소·사진)의 최근 일기가 문예춘추(文藝春秋) 12월 호에 공개됐다. 일기는 노벨상 수상이 결정된 지난달 9일부터 22일까지의 심경을 솔직하게 밝혀 놓았다.

다나카는 수상을 통보받은 9일 "기자들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급히 호텔로 갔지만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라고 적었다. 10일에는 "도쿄행 열차를 타기 위해 교토역으로 갔는데 귀빈실로 안내받았다. 역에 귀빈실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며 달라진 대접에 놀라워했다. 또 "만나는 사람마다 축하인사를 한다. 이제 더 이상 전철을 못타는 것이 아닐까. 모처럼 집에서 아내와 함께 편의점에서 산 주먹밥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수상에 대한 기쁨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하는 불안감이 더 앞선다"(12일)라고 털어놓았다.

"내 연봉이 8백만∼9백만엔인 것을 처음 알았다. 월급 명세서도 처음 봤다. 월세로 살지만 애가 없어 불편함은 없다. 돈이 필요하면 아내에게 받아 썼다"(15일), "잘 생긴 모델도 아닌데 최근 미녀들로부터 꽃다발을 많이 받는다. 부끄럽다"(16일), "나는 원래는 백발인데 2주 전 머리를 깎을 때 염색해 놓기를 잘했다"(17일), "오늘은 행사 없이 여유 있게 하루를 보냈다. 아내와 백화점에서 양복·넥타이·구두를 샀다. 저녁에는 아내와 도쿄에 갔다. 결혼 후 처음이다"(20일) 등 소시민다운 마음과 생활을 묘사한 글도 눈에 띈다.

그는 22일에는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 피곤해서일까, 기가 빠져서일까. 지난 5월 영국에서 돌아왔을 때는 가을에 아내와 함께 단풍구경을 가기로 했는데…포기하고 논문이나 써야겠다"며 톡톡히 치르고 있는 유명세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dayyoung@joongang. co. 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