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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① 인재양성 나선 부산시:民·官 손잡고 人材기금 1000억 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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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부산 시내 대학원에서 메카트로닉스·신소재 등의 분야를 연구하는 22개 연구팀(1백20명)에 소속된 석·박사들은 이달부터 1년 동안 부산시에서 매달 40만∼60만원씩 장학금을 받는다.

대학원생이 연구와 관련해 자치단체에서 장학금을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부산시가 이공계 분야의 인재 육성을 위해 도입한 '브레인 부산(BB) 21 사업'의 수혜자다.

부산시가 인재육성에 발벗고 나섰다. 아시안게임 등 국제행사를 치르면서 경기장 건설·교통망 확충 등 국제 수준의 하드웨어를 갖췄다고 보고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작업에 나선 것이다.

컨테이너 물량 처리 규모가 세계 3위인 천혜의 국제무역항,세계수준의 관광자원, 국제행사를 통해 높아진 브랜드 효과를 활용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엔진역할을 담당할 인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인재육성에는 부산시만 나선 것이 아니다. 부산시교육청과 대학·기업도 동참하고 있다.

21세기에 동북아시아 물류중심항이 되고,동시에 전시·컨벤션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부산시의 최대 화두로 인재육성이 선정된 것이다.

◇왜 인재육성인가=지역의 기업들은 안상영(安相英) 부산시장이나 대학 총장 등과 간담회를 할 때마다 "제대로 쓸 만한 인력이 없고 힘들게 키워놓으면 서울로 빠져간다"고 호소한다.

이과대·공대 졸업생들이 양적으로 부족한 것은 아니다. 부산지역 대학에서만 한해 4만5천여명이 배출되고 있다. 그러나 질적 수준에 서 기업체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오랜 기간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야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부산지역 고등학생 가운데 대학수능 성적 상위 5% 이내 학생 중 62.5%가 서울지역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도 문제다.

부산시 정책개발실이 최근 벤처기업 4백1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6.5%는 "전문인력 부족이 가장 큰 취약 부분"이라고 털어놨다.

김형균(金瀅均)정책개발실장은 "지방에서는 전문인력을 얼마만큼 확보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을 정도로 우수 인력확보가 절실한 현안"이라고 주장했다.

부산대 경제학과 임정덕(林正德)교수는 "수도권이 지방도시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우수한 인재가 많이 모여있기 때문"이라며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어서 인재육성이 지역 발전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육성기금 1천억원 조성=부산시는 내년에 인재육성 기금 1천억원을 조성해 인재육성 프로그램과 대학의 특화 프로젝트, 직업훈련, 산학 협력사업 등에 사용키로 했다. 자치단체가 스스로 이같은 거액을 조성한다는 발상 자체가 충격적이다.

세계적인 연구소를 유치하기 위해 외국 실무진과 접촉 중이며 부산에 둥지를 틀게 되는 연구소에는 부지를 무료로 제공키로 방침을 정했다. 연구소 유치계획은 우수한 인력의 유치와 함께 키워 놓은 인력이 부산에서 계속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기 위한 작업이다.

부산시 직원을 국적에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채용하는 방안도 연구 중이다. 안상영 시장은 "한국인만이 공무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부터 바꿔야 하고 필요한 우수한 전문 인력은 국적에 관계없이 채용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장기적으로 부산시는 ▶인재개발 마스터플랜 마련 등 인프라구축 ▶인재양성 및 공급 ▶인재배분 및 활용(유출방지 포함)▶고급인재 유치 등 4개 분야로 나눠 인재육성 계획을 세워 추진 중이다.

◇다함께 인재육성=부산시는 지난 9월 초 '브레인 부산 21 사업'을 시작, 인재육성에 불을 댕겼다. 지역 대학원에서 메카트로닉스·신소재 등을 연구하는 석·박사 22개 연구팀(1백20명)을 선발, 11월부터 1년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시는 이 사업에 10억원을 쏟아부어 이중 80%는 장학금으로, 나머지 20%는 기자재 구입비로 사용키로 했다.

교육부는 최근 부산시를 지역 인적자원 개발 시범지역으로 선정했으며, 부산시교육청도 지역인재 개발에 발 벗고 나섰다. 교육청과 부산상의·부산지방노동청·17개 대학 등 23개 기관이 지역인적자원개발협의회를 구성, 교육부가 지원한 2억원으로 지역 인적자원 개발 세부계획을 마련 중이다.

우수두뇌의 산실이 될 과학영재학교도 내년 3월 문을 연다. 학생선발·교육과정·교원임용·학생평가 등에서 완벽하게 자율이 보장돼 일반 학교와 차별화되는 학교다.

학년당 8개반 1백44명을 선발해 영재교육을 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추진 중이다.

설동근(薛東根)교육감은 "과학영재고의 경우 모든 학사업무를 독자적으로 운영하면서 대학 입시에 매달리지 않고 진정한 과학영재를 길러내는 교육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해까지 8곳에 불과하던 특성화고교에 해운대관광고·부산정보관광고·대진정보통신고 등 세곳을 추가 지정했다. 내년에는 물류·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와 관련된 2개교를 더 늘릴 계획이다.

대학들의 자체 인재개발 노력도 활발하다.동아대·경성대 등 부산지역 12개 대학은 재단법인 형태의 부산인재개발원을 구성, 지난 7월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인재개발원은 ▶대학과 각급 학교 졸업생의 취업대책 수립과 취업교육 실시 ▶지역사회의 교육수요에 부응한 평생교육의 기획·실행 등의 사업을 펴게 된다. 1백억원의 기금도 마련할 계획이다.

'인디안'브랜드로 유명한 부산의 대표적인 패션업체인 세정의 경우 지역 인재를 우선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채용 후에는 대기업과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해 우수 인력이 서울 등 외지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있다.세정의 대졸초봉은 삼성의 90% 수준이다. 관청·학교·기업·시민이 모두 지역인재 육성을 위해 뛰고 있는 것이다.

정용백 기자

chungy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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