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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건강] 아동비만 ↔ 정서장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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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당신의 자녀는 뚱뚱한 편입니까. 그렇다면 아이의 '삶의 질'은 이미 떨어져 있다고 봐야 합니다.'

비만과 정서는 상호 영향을 미친다. 뚱뚱함으로 인해 정서 문제가 발생하고, 정서 장애 때문에 비만아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자녀가 비만아로 판정되면 아이의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사회 적응을 위한 정서 발달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체중관리에 들어가야 한다.

지난 5일 호주 멜버른의 아동연구소 조앤 윌리엄스 박사팀은 1500명의 어린이들을 3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몸무게가 평균 체중을 넘는 순간부터 우울.분노.반항적인 행동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래로부터 놀림을 잘 당하고 함께 어울려 운동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비만아들은 급우들이 자신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굳게 믿고 있었다.

국내에도 비슷한 연구결과가 있다. 최근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 정신과는 남녀 중학생 450명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체중에 따른 사회성 조사를 벌였다.

결과는 비만 학생이 정상 체중.저체중인 청소년에 비해 사회성과 정서적인 기능, 그리고 학업 수행 분야에서 떨어질 뿐 아니라 난폭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보였다.

뚱뚱하면 몸놀림이 둔해지고 신체 활동을 꺼린다. 따라서 또래 아이들은 비만한 친구를 자신들의 집단에 끼워주지 않는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 정신과 정유숙 교수는 "설사 뚱뚱한 어린이가 같이 놀고 싶어 하더라도 또래들이 동작이 둔한 친구와 어울리기 싫어한다"고 들려준다. 자연 외톨이가 된 아이는 집에서 TV 시청이나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먹는 일에 집착하고, 체중은 더욱 증가하는 악순환을 밟는다.

반면 아이의 정서가 불안하고 우울한 경우 스트레스 해소 수단으로 과식하면서 비만아 대열에 들어간다. 힘든 상황에 직면하면 실컷 먹음으로써 포만감을 느끼고, 울적함을 일순간에 떨쳐버리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는 어른들이 힘든 일에 부닥칠 때 술을 마시면서 모든 것을 잊으려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한다. 배불리 먹고 나면 온 몸이 나른해지면서 배가 꺼질 때까지 긴장이 일시적으로 해소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만 치료는 흔히 강조되는 식사.운동요법뿐 아니라 상담 등을 통해 정서적인 문제도 함께 치료해야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있다. 무조건'적게 먹어라'고 강요하는 대신 아이가 겪고 있는 정서적 어려움부터 점검해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사례1 : 중2 여학생

-5학년 때부터 3년간 체중 20㎏ 증가(그동안 10㎝ 성장)

◆ 증상: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또래와 어울리지 않는다. 학교 성적도 해마다 점점 나빠진다. 학교에서 귀가하면 밖에 나가질 않는다. 친구와 싸우거나 선생님한테 혼난 뒤 기분 나쁠 때 더 많이 먹는다.

◆ 본인의 느낌:실컷 먹고 배가 부르면 기분이 좋아진다.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심하다. 나는 못난 인간이란 생각을 한다. 움직이는 게 싫고 귀찮다.

◆ 진단:우울증과 동반된 비만

◆ 처방:우울증에 대해 6개월 이상 약물치료.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기분이 나빠지고 스트레스를 받는지 알아본다. 운동을 비롯한 신체 활동량을 늘린다. 먹는 것으로는 상황이 바뀌지 않으며, 오히려 스트레스로 인해 폭식을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약물.운동.인지행동치료 등을 1~2개월 한 뒤 우울한 상태가 좋아지면 그때부터 식사요법(초콜릿.사탕.패스트 푸드 안 먹기, 배고프지 않을 때 안 먹기 등)을 시작한다.

#사례2 : 초등 6학년 남학생

-영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늘 뚱뚱했다.

◆ 증상:고학년이 되면서 신경질이 많아졌다. 요즘 매사에 과민한 반응을 보인다. 남이 뚱뚱한 얘기를 해도 자기를 놀린다고 시비를 건다. 성적이 떨어졌다.

◆ 본인의 느낌:친구들이 뚱보라고 눈총을 주고 놀리는 것 같다. 학교에 가기 싫다. 친구들과 놀고 싶어도 어울릴 수 없다. 자신이 미련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 진단:비만으로 적응장애가 생긴 경우

◆ 처방:뚱뚱한 상태를 과학적으로 설명해준다(체지방 분포도, 살찌면 생길 수 있는 질병 등). 음식 종류에 따른 영양 교육을 충분히 해준다(패스트푸드는 왜 나쁜지, 달고 기름진 음식의 문제점 등). 살을 빼야 할 이유를 인식할 때까지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본인이 재미있게 생각하는 운동을 선택하게 한다. 살빼기 치료(운동+식사요법)는 아이의 의지가 확인되면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 살찐 어린이.청소년이 가지는 문제점

1.정서적인 문제점

-두렵다 -우울하다 -화가 난다

-잠들기 어렵다 -매사 걱정이 많다

2.교우관계의 문제점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한다

-다른 아이들이 나와 친구 되기를 싫어한다고 믿는다.

-친구들이 나를 놀린다.

-또래 아이들이 잘하는 일을 나는 제대로 못한다

3.학업상의 문제점

-수업시간에 잘 집중하지 못한다.

-학교수업을 제대로 따라가기 어렵다.

-몸이 여기저기 불편해 결석할 때가 많다.

-특별한 병이 없는데도 병원을 자주 간다.

자료: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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