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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여인'성혜림-사망후새로밝혀진사실들>아들김정남,장례식무렵모스크바서목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1996년 1월 이후 행적이 묘연했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전 동거녀 성혜림씨는 당초 지난 7월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사망 일자는 5월 17일인 것으로 새롭게 밝혀졌다.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최후를 맞은 성씨의 사인은 오랫동안 앓아오던 극도의 신경쇠약과 우울증, 신경성 질환 등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녀가 숨진 병원은 모스크바 시내 중앙의료원이다. 모스크바의 중앙의료원은 모두 두 곳으로 러시아 정부 고위급이나 외국의 고위급 인사·가족들이 치료받는 곳과,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등 러시아 내 최고위급 인사들이 치료받는 곳이 있다. 성씨는 고위급 인사들이 이용하는 중앙의료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모스크바의 정통한 소식통들은 성씨가 사망 전 이미 심신이 극도로 쇠약한 상태였으며 병원에 실려왔을 땐 회복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성씨는 두차례 입원한 끝에 숨졌다. 성씨는 지난 5월 12일 위급한 상태로 모스크바 중앙의료원에 긴급 호송됐으며 15일까지 입원해 있다가 상태가 일시 호전돼 퇴원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17일 밤 위독한 상태로 다시 병원에 실려왔으며 곧바로 숨을 거뒀다.

북한의 요청을 받은 병원 측은 성씨를 부검하지 않았으며 진료기록 등 관련 자료도 대부분 파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성씨의 시신은 곧바로 안치소로 옮겨졌으나 이날 밤 사라졌고 그 이후의 행방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소식통들은 "아마도 북한 측이 성씨의 시신을 은밀한 장소로 옮겨 보관하다가 평양의 지시에 따라 비밀리에 장례를 치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소식통들은 5월 17일 밤 성씨를 병원에 데려온 사람들이 세 명이었으며 이들은 성씨가 숨진 후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이후 몇 사람이 더 병원에 왔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 중앙의료원의 한 관계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쇠약해진 성씨는 이 병원 정신과 병동에서 여러 차례 치료를 받았으며 그 때마다 성씨를 데려온 사람들이 진료신청서에 '오모'라는 가명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의 한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외교관 및 가족들이 소련과의 협정에 의해 등록한 우페데카(주 러시아 외교관 지원을 위한 러시아 외무부 산하조직) 기록카드에 오씨는 북한대사관 보조요원으로 돼있고 나이도 성씨보다 어린 40년대 후반 생이다. 그러나 이 소식통은 오씨의 이름이 사용된 많은 곳에서 생년월일이 각각 다르게 기록돼 있어 이 이름은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관 측이 특수용도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70년대 중반부터 모스크바에 머무르면서 평양과 스위스 등을 수십차례 방문했던 성씨는 '신정희'라는 이름의 여권을 사용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씨는 92년 조카딸 이남옥의 유럽국 망명, 그리고 80년대 초반 조카 이한영의 행방불명(후에 한국 귀순으로 확인) 등으로 곤란한 처지가 되기도 했지만 이 사건들이 공개되지 않은 탓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96년 1월 발생한 언니 성혜랑씨의 망명 사건 이후 성씨는 사실상 유폐생활에 들어갔다. 제네바로의 여행이 금지되는 등 극도의 보호관찰 아래 놓이게 됐고 병세도 더욱 악화됐다고 한다. 이 사건 후 북한 측은 모스크바 바빌로바 85번지에 있던 성씨의 거주지를 옮겼으며 이후부터 성씨의 모습은 세간에서 자취를 감췄다.

성씨의 행적이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그녀의 아들이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이 모스크바를 자주 드나들면서부터다.

김정남은 2000년 이후 수시로 모스크바에 들렀으며 몇차례 한국과 외국언론에 행적이 잡혔다. 그러나 그의 자세한 행적은 드러나지 않았다. 모스크바 시내 모스필리모프스카야 거리에 있는 북한대사관 근처에서 목격된 것 등이 고작이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2001년 8월, 당시 김정남도 현지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성씨와 김씨 부자간 만남이 이루어질 것인지가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세 사람이 실제로 만났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처럼 은밀하게 움직이던 김정남이 지난 5월 모스크바의 한 호텔 가라오케에서 만취해 흐트러진 모습으로 노래 부르는 것이 목격됐다. 그의 움직임을 추적했던 한 소식통은 그가 매우 우울해하는 것 같았으며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이후 행적이 묘연했던 김정남은 5월 22일 다시 사람들에게 목격됐고 이날 밤 모스크바 세례메체보-2 공항 귀빈실을 통해 베이징(北京)으로 떠났다.

모스크바=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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