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나스닥재팬 이래서 망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패장은 말이 없는 법이다. 지난 8월 문을 닫은 나스닥 재팬의 사에키 다쓰유키(佐伯達之·62·사진) 전사장도 지금까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그러나 장본인이 패인을 말해주지 않으면 누군가 또 실패하게 된다.

닛케이 비즈니스 최신호는 사에키의 발언과 행적을 따라 나스닥 재팬의 실패담을 재구성했다.

잡지에 따르면 사에키 사장은 벤처기업을 지원해 일본 경제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는 꿈 하나는 순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증권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이 증권시장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 패인으로 지적됐다.

닛케이 비즈니스는 사에키 자신은 미국 나스닥이 일본사정을 너무 무시했다는 점을 근본적인 실패요인으로 꼽았다고 전했다.

사에키는 나스닥이 나스닥 재팬을 미국식으로 운영할 것을 고집하자 "미국 기성복을 그대로 들여와 일본에서 파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반대했다.

그는 또 나스닥 재팬의 시장운영을 맡은 오사카(大阪)증권거래소와 미국의 나스닥 사이에 끼여 운신의 폭이 좁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나스닥 재팬의 사장으로서 처음 한 일은 양측의 계약을 백지화하는 것이었다.

원래 양측은 나스닥 재팬의 시장운영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일정비율로 배분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나스닥 측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수익규모에 관계없이 꼬박꼬박 고정액을 요구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에키 사장은 오사카 증권거래소와의 관계가 불편해졌고 이것이 나스닥 재팬을 운영하는데 큰 장애가 됐다는 게 닛케이 비즈니스의 진단이다.

사에키는 나스닥을 처음 일본에 끌어들인 손 마사요시(孫正義)소프트뱅크 사장에 대해서도 섭섭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금융시장에 빅뱅을 일으켜보자던 孫사장에 이끌려 30여년간 몸담았던 일본IBM의 부사장 자리를 박차고 나왔으나 결국 실패한 증권맨이 되고 만 것. 그는 회사경영을 놓고 孫사장과 깊은 얘기를 하고 싶었으나 孫사장이 워낙 바빠 제대로 만날 기회를 못 가졌다는 게 불만이었다.

사에키 전 사장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증권에는 아마추어인 사에키가 처음부터 사장으로는 부적합한 인물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또 창립 초기에 아무런 수입이 없는데도 비싼 임대료를 물어가며 본사를 도쿄(東京)의 일류 빌딩에 잡은 것도 두고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사에키 전 사장은 나스닥 재팬이 문을 닫기 전인 지난 1월부터 이미 대표권을 박탈당해 허수아비 노릇을 하다 지금은 정보기술(IT)업체인 EDS재팬의 사장으로 있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yhn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