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허영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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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내 고향은 전남 강진군 병영이라는 시골이다. 부모님은 그곳에서 조부모님을 모시고 농사를 주업으로 우리 6남매를 키우셨다. 장남인 나는 방학이면 시골에 내려가 농사일을 도왔다. 일꾼도 있었지만 그들만 시키지 않고 부모님도 똑같이 농사일을 하며 자식들을 먼 도시 학교에 보내느라고 고생을 많이 하셨다. 이를 지켜보며 자란 결과 자연스럽게 근면·성실과 자연의 순리를 존중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

시골 출신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기란 여간 고단하지 않다. 학비도 큰 걱정거리지만 하숙비 부담도 컸다. 그래서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가르치는 학생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입주 가정교사를 했다. 덕분에 하숙비를 해결함은 물론 용돈도 벌어 쓰면서 부모님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어 참 기뻤다.

요즘 아이들이야 이런 체험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식들에게 어릴 적부터 성실과 절약의 소중함을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세뱃돈을 얼마나 받았느냐''어디다 쓸 거냐'고 물으면 애비가 은행원이란 것을 알아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통장을 함께 내보이면서 은행에 저축하겠다고 자랑하곤 했다.

공책 한 장이라도 아껴쓴다든지, 연필 한 자루도 소중히 여기는 습관은 누가 강요해서 체득하는 게 아니다. 나 또한 아이들에게 무조건 강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삼남매 모두 낭비하지 않고 올곧게 자라기를 바란 나는 '아름다운 허영이란 없는 거다''절약이 미덕이다''가방 끈이 떨어질 때까지 메고 다니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길을 가다 근사한 가방을 보았다고 선뜻 지갑을 열지 말라는 얘기다'라는 말을 들려주곤 했다. 결국 부모님이 그러신 것처럼 나도 자식들에게 부지런함과 자연의 순리를 바탕으로 한 성실과 절약의 정신 자세를 강조한 셈이다.

삼남매가 잘 성장해 모두 결혼했다. 특히 두 딸에게 고맙다. 여성도 결혼한 뒤에 사회생활을 계속해야 한다고 여기는 나는 쌍둥이 엄마인 큰 딸과 둘째 딸이 30대 주부이자 성실한 직장인이라는 점이 대견스럽다. 쌍둥이를 키우며 직장에 다니는 게 힘들지 않느냐며 주변에선 편히 지내라고 이야기하지만 스스로 경제적 독립을 이루겠다는 의지로 불평 한마디 없이 꿋꿋이 오늘도 직장에 나간다. 어릴 적부터 자식들에게 강조한 독립심이 기초가 된 것 같아 뿌듯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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