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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2끝.장벽뛰어넘는여성파워]"女 봐라!"… 여성 파워가 몰려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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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달 26일 덕유산 국립공원에선 여성 2천여명이 신명나게 뛰어노는 '금남(禁男)의 축제'가 벌어졌다. 이 행사는 삼성화재가 7천만원을 들여 전국의 여직원들을 초청해서 연 '여사원 대축제'.

회사 측은 "여직원이 전 직원의 44%"라며 "이들의 자긍심을 키워주지 않고선 회사의 발전이 힘들다는 생각에서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기업이든 공직 사회든 여성 인력을 외면하고서는 도약이 어려운 시대가 왔다. 이에 발맞춰 에너지가 넘치는 한국의 여성 파워가 사회에 몰려오고 있다.

<그림 참조>

능력과 의욕을 갖춘 여성 인력을 활용하지 않는 조직은 경쟁력이 저하되는 시대가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여성 인력 활용은 21세기 한국의 국가 및 기업 경쟁력을 쇄신시킬 수 있는 주요 견인차이기 때문이다.

◇강해진 여성 파워=각종 시험에서 여성들의 합격률이 괄목할 만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외무고시의 여성 합격자 비율은 46%였다. 올해 9급 공무원시험에서 교육행정직의 75%, 일반행정직의 73%가 여성이었다. 정부는 급기야 합격자의 70% 이상이 남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게 하는 양성(兩性) 평등 채용목표제를 내년부터 도입키로 했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정보통신(IT)업계에서 대리급 이상 간부 중 여성의 비율이 26%(리쿠르트 조사)에 이른다. 성별을 가리지 않고 능력 위주 인사를 하는 외국계 기업 알리안츠생명의 경우 본사 직원 61명 중 여성이 42명이다.

다국적 제약사인 한국MSD는 중간관리자의 35%, 임원의 33%가 여성이다. 여성 중용에 우려의 시각이 많았으나 오히려 매출이 매년 급신장하고 있다.

또 지난해 여성이 대표자로 등록된 사업체는 1백2만3천개로 전체의 33.9%다. '사장님' 셋 중 하나는 '여사장님'인 세상이다.

여성인력 활용도가 가장 낮았던 정치 분야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 3월 개정된 선거법은 정당이 지방의회 의원의 비례대표 후보에 여성을 50% 이상 추천토록 의무화했다. 이로 인해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지방의회 비례 대표 중 여성이 67%에 달했다.

국회 여성위원회 박숙자 전문위원은 "여성 후보를 30% 이상 추천한 정당에 정치보조금을 지급키로 한 법률이 내년부터 적용되면 앞으로 여성 국회의원 숫자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19일 강원도 홍천의 한 콘도에선 검찰 사상 처음으로 여성 검사들만 참가한 워크숍이 개최됐다. 법무부는 늘어난 여검사들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남성적인 검찰 운영의 문제점을 바로 잡자는 취지에서 자리를 마련했다. 현재 여검사는 전체의 4.9%인 67명, 지난해와 올해 각각 20명씩 늘어났다. 서울고검 조희진(40)검사는 "앞으로 여검사의 역할이 늘어날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과학기술부는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 법'을 국회에 상정했다. 여성계의 요청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부 스스로가 필요해 제안한 첫 사례라는 점이 주목된다. 과기부 이은영 사무관은 "우수 여성 인력의 충원 없이는 과학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이 어렵다고 판단해 법안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여성부 한명숙 장관은 "최근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사회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라며 "여성 파워는 사회 일부에서 이미 주류로 자리잡기도 했다"고 밝혔다.

◇"한국 여성 우수해요"=다국적 제약사 한국 릴리는 직원의 31%가 여성이다. 아서 캇사노스(44)사장은 "여직원의 42%가 기혼 여성인데 남자직원과 경쟁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며 "특히 연말에 선정하는 최우수 사원 포상을 여직원이 대부분 휩쓸 정도여서 한국 여성의 잠재력에 놀랐다"고 말한다.

한국 HSBC은행은 직원의 70%와 임원의 40%가 여성이다. 자유로운 휴가제 등 특유의 가정친화적인 기업문화 때문에 한국에서 유난히 여성 지원율이 높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은행 관계자는 "런던·홍콩·대만 등 외국 지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높은 여직원 비율"이라며 "한국 여직원의 꼼꼼한 일처리와 영어 실력을 본사에서 특히 높게 평가한다"고 전했다.

보잉코리아의 윌리엄 오벌린(59)대표이사는 "한국에서 16년간 일했는데, 높은 교육 수준을 갖춘 한국 여성직원들의 책임감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것"이라며 "한국 정부는 여성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할 필요가 크다"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들에 의해 한국 여성의 우수성과 의욕이 어느 정도 검증된 셈이다. 이제 절실한 일은 '뛰자! 한국 여성'시리즈가 제기해온 여성에 대한 장벽, 편견이 배어든 제도의 개편과 탄력근무제 같은 직장 내 가정친화적 제도 도입 등에 우리 사회가 나서는 것이다.

bet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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