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뒷문 탈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후보단일화를 추진하기 위해 탈당한 지역구 의원들과 행동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출당시켜 달라."

민주당 최명헌(崔明憲)·장태완(張泰玩)·박상희(朴相熙)의원 등 전국구 의원 3명이 4일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 소속 지역구 의원 11명의 탈당선언에 동참의사를 밝힌 뒤 당 지도부에 내놓은 요구다.

당을 나가고 싶지만 '비례대표 의원이 정당의 합당·해산 또는 제명 외의 사유로 당적을 버릴 경우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선거법 제192조의 규정이 가로막고 있으니 당에서 제명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는 납득하기 어렵다. 바로 이들의 운신을 제약하는 선거법의 취지 때문이다. 이 조항은 1992년 13대 대선 과정에서 전국구 의원들의 당 바꾸기가 성행하면서 95년 4월 여야합의로 신설됐다. "비례대표 의원들은 개인에 대한 지지라기보다 당의 이념과 정책에 대한 지지로 당선됐기 때문에 당적변경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에 따른 것"이라는 게 선관위의 설명이다.

물론 이들이 "후보단일화를 위해 탈당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면 의원직을 버리면서 탈당하는 것이 법 정신에도 맞고 명분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의원직에 집착하면서 당에 제명을 요구하는 모습은 이날 탈당선언문에 적힌 '후보단일화를 위한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개운치 않기는 탈당설이 돌고 있는 유용태(劉容泰)총장의 최근 언행도 마찬가지다. 劉총장은 3일 밤 후단협의 탈당 결의 모임이 끝난 뒤 핵심의원 5명과 비밀리에 회동했다.

劉총장은 갑작스레 마주친 취재진에 "당의 사무총장으로서 나간다는 분들을 설득하기 위해 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자리를 함께 한 후단협의 한 의원은 "최종적인 탈당 결심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1백% 우리에게 와 있다"고 전했다. 劉총장은 지난 1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후단협 핵심의원들의 회동에도 참석했었다. 劉총장 역시 정치적 판단과 선택의 권리를 갖고 있다. 따라서 소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보다 당당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tigerac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