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 하려면 제대로 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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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지난 1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D사의 홍보 담당자를 만나 얘기를 나누다 '아차!'했다.

평소처럼 "4분기 실적 전망은 어때요?"라고 물었는데 공교롭게도 이날은 기업의 실적·사업계획 등 중요 정보를 특정인에게만 알려줘선 안된다는 '공정공시제'가 처음 시행된 날이었다.순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투자자·애널리스트들의 반응은 어떨지 궁금했다. 여의도 H증권사 객장에서 만난 鄭모(34)씨는 "기업들이 정보 공개를 꺼리면 오히려 '독'이 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W증권사의 金모 연구원은 "당분간 정보 공개가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첫날 제법 많은 공정공시 정보가 쏟아졌다. 그런데도 증권가에선 아직 미덥지 않다는 반응이다. 익숙지 않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기업들이 몸을 사려 정보량이 오히려 줄거나, 아니면 거꾸로 시시콜콜한 내용이 쏟아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탄 미국의 조지 애커로프 교수는 "정보가 불평등하게 유통되면 '레몬 주식'이 시장을 지배한다"고 지적했다. 레몬은 쓰고 신맛 때문에 영어에서 종종 질 낮은 상품·서비스로 통한다.

'레몬 주식'은 부족한 정보 때문에 실제 기업가치에 비해 주가에 거품이 끼거나, 그릇된 정보로 투자자들을 유혹하는 종목이다. 한국 투자자들도 얼마 전 닷컴 주의 실상을 몰랐다가 쓴맛을 보지 않았던가.

"공정공시제가 실효를 거두려면 기업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개인투자자 金모(29)씨의 말이 와닿았다.

이젠 중요한 정보를 제때 당당하게 내놓는 기업들이 투자자들에게 대접받는 시대가 됐다.

김준술 기자

jso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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