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국제영화제 화제의 두 감독>다큐·픽션 형식 결합 '역사 다시쓰기'꿈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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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국 인디애나 출신의 진 세버그입니다. 55년 오토 플레밍거 감독이 '잔 다르크'를 만들기 위해 전국적인 오디션을 열었는데 3천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지요. 그 때 내 나이 열일곱이었습니다."

마크 라파포트 감독의 '진 세버그의 일기'는 한 여배우가 나와 이같은 내레이션을 하면서 시작한다. 물론 실제 진 세버그가 아니다.

라파포트 감독은 이처럼 가짜 세버그와 그녀의 가짜 일기, 거기에 세버그에 관한 '진짜' 각종 자료를 중간중간 섞어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세버그는 '슬픔이여 안녕',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에서 장 폴 벨몽도와 공연(共演)하면서 60년대 세계 영화계에서 스타의 지위를 누렸다.

프랑스 영화에 출연해 유명해진 미국 배우라는 점, 흑인 지위 향상을 위해 블랙 팬더라는 조직을 지원하는 등 정치적인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던 점, 그리고 마흔 한살 한창 꽃피울 나이에 파리 뒷골목에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진 채 발견 됐다는 점 등으로 많은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소피의 선택'의 원작자인 윌리엄 스타이런은 우울증에 시달린 자신의 경험을 기록한 『보이는 어둠』(문학동네)에서 세버그가 우울증 때문에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세버그의 남편이었던 유명 작가 로맹 가리도 우울증에 시달리다 세버그가 죽은 지 1년 뒤 권총 자살했다).

-형식이 흥미롭다.

"내 영화는 완전한 픽션도 완전한 다큐멘터리도 아니지만 굳이 따진다면 픽션에 가깝다. 이미 죽은 세버그를 현재 살아 있는 것처럼 하면서 영화를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이전에도 배우 록 허드슨에 관해 비슷한 방식으로 영화를 만든 적이 있다."

-일종의 '역사 다시쓰기(Rewriting History)' 같은데.

"얼마전 존 가필드에 대해 짧은 영화를 만들었다. 가필드가 영화사상 최초로 섹시한 유대인 스타였다는 점, 그리고 매카시즘이 판치던 시대에 정치적 박해를 받은 인물이라는 점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난 존 웨인 같은 스타에게는 관심이 없다. 내 영화는 단순한 전기물이 아니다. 에세이에 더 가깝다. 정확한 사실(史實)을 늘어놓는 식이 아니라,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느냐고 제안하는 영화다."

-영화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80년 베를린에서 고다르의 '영화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영화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5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누벨 바그가 등장하면서 부터다. 고다르나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에릭 로메로 등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는 아무나 만들 수 있고 또 영화에는 정해진 관습(컨벤션)이 없다는 혁신적인 생각을 하게 됐다.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는 17세 때 처음 보고 그런 영화도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전율을 느꼈다. 물론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도 당시엔 비슷한 감흥을 받았다. 그러나 '히로시마 내 사랑'은 지금은 보기가 불편하다. 인종적인 편견 등이 보이기 때문이다. '네 멋대로 해라'는 아무리 반복해서 봐도 새롭고 더 좋아진다. 고다르가 영화에 끼친 영향은 피카소가 현대 회화에 미친 바와 비견할 만하다."

-준비 중인 작품은.

"이탈리아의 피에로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과 그의 영화에 출연했던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에 대한 픽션 영화를 준비 중이다. 4년간 대본을 써 오고 있는데, 제작비 조달이 여의치 않다."

광주=이영기 기자

ley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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