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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높을수록 행동은 낮게 해야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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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보성스님은…

▶1928년 경북 성주 출생

▶1945년 해인사에서 구산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수지

▶1950년 해인사에서 상월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수지

▶1973년∼94년 송광사 주지와 중앙종회의원 등을 역임

▶1997년 조계총림 제5대 방장 취임

"절에 올 때 뭐 짊어지고 왔능가. 남에 밥에, 남에 터에, 남에 옷으로 살맨서…. 부처님이 어데 좋은 환경에서 공부했나. 나무 밑에서 공부했지. 속이 텅 비어 있으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기라. 생각이 높을수록 행동은 낮게, 고개를 숙이는 거지. 뜻을 얻으면 말을 잊는다고 했어."

최근 조계종 원로회의에서 제 6대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에 추천된 보성스님(송광사 방장)은 지금의 승풍이 마뜩지 않은 모양이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에 거침이 없다. 지난달 29일 보성스님은 어깨 치료를 위해 상좌인 지현스님이 주지로 있는 부산 관음사에 묵고 있었다.

"놈들 더럽게 공부하기 싫어하면서도 주지는 하고 싶어서. 이제 물고기가 낚싯밥에 걸린 기라. 나도 미움 살 작정했어." 지난달 해인사에서 치른 3급 승가고시 시험을 지켜본 스님의 소감이다. 그러면서 스님은 "내년에는 시험 칠끼데이…"라며 껄껄 웃었다. 조계종이 법계제도를 정비하고 처음 치른 3급 승가고시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응시한 스님들에게 7일간 강의를 듣고 소감을 적게 했다.

전계대화상이란 스님을 배출하는 계단(戒壇)을 관장하는 자리다. 세납 65세 이상, 승랍 45년 이상인 스님에게 자격이 주어진다. 보성스님은 맘에 그릇됨이 없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어 주고, 다른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거친 말을 하지 않으면 계(戒)가 바로 서게 된다고 강조했다.

"불살생(不殺生)이라 했제? 그런데 그건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얻게된 의미야. 본래는 불상해(不傷害)인기라. 말로도, 행동으로도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뜻일 게야. 그 단계에 오르면 인격적으로도 갖춰야겠다는 욕구가 생기게 되지."

보성스님은 은사인 구산스님 외에 구산스님의 은사이던, 말하자면 보성스님의 할아버지뻘 되는 효봉스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당시 효봉스님은 보성스님을 볼 때마다 "나를 보는 게 곧 공부데이. 내 행동을 흉내라도 내라"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처음 절에 왔을 때 효봉 스님과 청담 스님을 보니 수행이 체계적이고 출가할 자격이 있는 스님이란 생각이 들었어. 지금은 티베트에 그런 승풍이 남아 있어. 영어와 산스크리트어까지 배우며 15년간 준비를 한다던데…."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식 스님이 되기까지 강원에서 4년 교육받는 것이 전부다. 이같은 현실에 대해 스님은 "추접어서…."라고 한마디했다.

"20세만 되면 어지간하면 홀로 설 수 있다고 했지만 하도 돌아가는 모양새가 꼴사나워서 13년 전에 범어사 강원에서 시험을 치겠다고 선언해버렸지. 지금도 나를 보면 '커닝하다가 스님한테 혼났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어." 그러면서 범어사 법당이 불에 날아갈 뻔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때 비구계 시험에 낙방한 일곱 명이 휘발유통을 들고 온 기라. 중이 귀해지면 우짜노 캤지만 그래도 난 좋다고 대들었지."

언젠가 스님은 달라이 라마가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로 지호스님 등을 데리고 갔다. 변화하는 세상을 확인하게하려는 속셈이었다. "한국불교 제일이라 카제, 어림도 없다. 대승·소승도 나눌 필요 없어. 요즘 사람이 알아듣게 불교를 전하는 사람이 최곤기라. 재가와 출가도 나눌 거 없어. 불교만 잘 알면 되지."

보성스님은 오도송(悟道頌:도를 깨치고 읊는 노래)보다 임종게(臨終偈:입적할 때 짓는 글)에 무게를 더 둔다. "누구든지 평소에 똑똑해도, 마지막까지 깨달음이란 이런 거라고 보여주기는 힘든기라. 평소에 매순간을 흐트러지지 않게 단속하자는 뜻인 기라."

부산=정명진 기자

m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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