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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운동하십니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요즘 운동하십니까. "

누가 친구에게 묻더란다.

"안합니다. "

대답하고 나서 확인할 필요를 느꼈다.

"골프 말씀하시는 거죠. "

"그렇습니다. "

언제부터인가 일부 계층에서는 '운동=골프'라는 등식이 성립되기 시작했다.

'골프가 무슨 운동이냐'는 반론이 강하게 제기된다. 사실 젊은 사람들에게 골프는 운동이라기보다 놀이에 가깝다. 그러나 평소 운동을 하지 않는 장년이나 노년층에게는 운동이 된다. 네시간 넘게 7㎞ 정도를 걸으니까 '그거라도 어디냐'다.

하긴 축구하는 사람들은 '야구가 무슨 운동이냐'고 한다. 야구인들은 펄쩍 뛸 일이지만.

요즘 정말 운동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면서 헬스클럽에는 이른 새벽이건 밤 늦은 시간이건 운동하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동네 어귀마다 있는 근린공원에는 배드민턴을 하는 아줌마·아저씨들로 항상 만원이다.

특히 마라톤 인구의 증가세는 폭발적이다. 누구나 어디에서나 할 수 있고 간편하다는 장점 때문이다. '러닝 하이(처음에는 숨차고 힘들다가 어느 순간을 넘어서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것)'를 경험해 보고는 마라톤에 중독된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직장 단위로, 가족 단위로 틈만 나면 뛰고 또 뛴다.

각종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일년에 수십차례 열리는 대회마다 1만명이 넘는 마라톤 동호인이 참가한다. 3일 열리는 중앙일보 마라톤대회는 가장 많은 사람이 참가하는 '5㎞ 구간'을 없애고 10㎞·하프(21.0975㎞)·풀코스(42.195㎞)만 신청을 받았는데도 2만명이 넘는 사람이 몰려와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풀코스에 도전하는 아마추어가 1천5백명이나 된다. 자꾸 뛰다 보니 실력도 늘어 여자 풀코스는 선수가 아마추어에게 잡힐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나올 정도다.

그런데 어른들은 자꾸 건강해지고 튼튼해지는데 우리 아이들은 점점 약해지고 비실비실해진다.

아이들은 운동할 시간도 없고 운동할 장소도 없다. 여가 시간은 학원과 컴퓨터에 뺏긴 지 이미 오래다. 거의 유일하게 운동할 장소가 학교인데 여기서도 '체육 시간은 찬밥'이다. 선택 과목이 된 체육 시간은 줄어만 가고, 체육 교사들은 자조적으로 스스로를 '아나공 선생(아나공이란 '여기 공 줄테니 너희들끼리 놀아라'라는 뜻)'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은 으레 남자는 축구, 여자는 피구를 한다. 흥미도 없고, 재미도 없고 그저 시간만 때운다.

정부 기관에 학교 체육을 담당하는 부서가 없다는 것만 봐도 이 정부가, 어른들이 얼마나 아이들 건강에 무관심한지 알 수 있다. 부산 아시안게임이 끝난 직후 대한체육회가 주최가 돼 학교 체육을 살리기 위한 심포지엄을 한 적이 있다. 아시안게임에서 목표치를 넘은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기초 종목인 육상과 수영에서 여전히 맥을 추지 못하는 한국 스포츠의 맹점은 바로 저변이 약하기 때문이다.

"학교 체육 전담 부서를 부활시키자"는 한목소리를 들은 이상주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과연 어떤 조치를 취할지 지켜보자.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생각이 나온다.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밝고 얼굴에 생기가 넘쳐난다. 술과 일에 찌든 사람들의 입에서는 짜증이 나오게 마련이다.

공부와 컴퓨터에 파묻힌 아이들에게서 무슨 생각, 무슨 말을 기대할 것인가.

내가 뛸 때 아이들과 함께 뛰자. 산에 오를 때 함께 오르자. 그리고 수시로 물어보자.

"얘들아, 요즘 운동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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