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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과 국방]"첨단기술도 중요한 전쟁 억제수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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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4면

미국 국방장관을 역임한 페리 박사는 국방력을 높이는 핵심은 '이용 가능한 최신 과학 기술'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단 시간에 전력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방력의 핵심이 과학기술이라는 말이다.

군사 대국인 미국을 제외하고라도 과학기술을 군에 적절하게 활용해 자주 국방 능력을 갖춘 나라들은 많이 있다. 이스라엘과 일본이 대표적인 국가다.

작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아랍과의 전쟁에서 연전 연승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첨단 무기에 필요한 기술을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개발한다는 국방 과학기술정책을 유지해 왔다. 그 결과 무인항공기 시스템·미사일 등 첨단 무기를 비롯해 각종 재래식 무기의 성능 개량 기술은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나라가 됐다. 우리보다 인구는 8분의1, 국내총생산(GDP)은 6분의 1, 군사비는 2분의1∼3분의1에 불과한 데도, 자기보다 5배나 많은 인구를 가진 아랍국가들 속에서 나라를 굳건히 지킬 수 있는 비결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평화헌법과 비핵(非核)원칙 등 군사력을 쉽사리 키울 수 없는 각종 제약을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그런 중에서도 장기적 안목에서 '전략적 차원의 첨단 핵심기술'을 선별해 발전시킴으로써 아무도 얕볼 수 없는 잠재적 군사력을 갖추게 됐다.

역사를 되돌아봐도 강한 군사력의 뒤에는 과학기술이 있었다. 칭기즈칸은 도시 성곽을 효율적으로 공격하는 무기 기술을 개발해 몽골 제국을 건설했다.

이탈리아의 우수한 청동 총포 기술은 로마제국을 유지하는 힘이었으며, 프랑스는 에콜폴리테크닉 사관학교 기술자들이 혁신적인 무기들을 만들어 나폴레옹의 서구 제패를 뒷받침했다.

발달한 증기기관 기술과 철제 총포 기술이 아니었다면, 영국은 19세기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말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침략에 쓰이기는 했지만,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려고 생각한 것도 항공기·정밀화학 등 첨단 과학기술의 힘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나아가 미국은 전쟁에서 승리한 뒤 독일의 우수한 과학기술자들을 대거 이주시켜 군사대국이 되는 것은 물론, 경제·정치 분야에서도 세계의 패권국이 됐다.

요즘은 '기술 기습'이라는 말도 있다.첨단 신무기를 덜컥 내놓는 것 자체가 안보 측면에서 자국에는 커다란 이익을, 타국에는 충격을 준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역사와 현실이 이렇지만 우리의 군사 과학기술 개발 여건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국방비 중에 연구개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4%로, 10∼15%인 선진국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또한 현대전을 어떻게 끌고 나가야하는 지 연구하고 시험할 수 있는 기반 시설도 열악한 상태다.

장기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무기체계는 우리가 만든다'는 정신으로 전력 증강에 임해야 하고, 이를 위한 여건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첨단기술은 중요한 전쟁 억제력이다. 직접 무기를 확보해 야전에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첨단무기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보유하는 것도 자주 국방을 위해 필요한 전력증강의 대안이다.

특히 통일 이후 러시아·중국·일본 등 강대국에 둘러싸여 자주 국방을 확보해야하는 우리에게 군사 과학기술의 선진화는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핵심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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