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놀란 '배터리 혁명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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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제가 2차 전지인 리튬폴리머 전지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표정을 짓습니다."

코캄엔지니어링의 홍지준(洪智俊ㆍ46)사장의 첫마디는 리튬전지가 어느 정도의 첨단 제품인지를 가늠케 한다. 그는 리튬폴리머 2차 전지를 개발한 공로로 지난달 정부로부터 산업훈장을 받았다.

洪사장은 엔지니어다. 서울대 화학교육과를 졸업하고 동양나일론과 현대전자 등에서 근무하다 1993년 각종 기계 장비를 제작하는 회사를 차렸다. 98년 그는 장비제작으로는 고부가가치 창출이 어렵다고 판단,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개발하지 못한 리튬 2차 전지 개발에 도전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연구인력 50여명이 매일 16시간씩 개발에 몰두했지만 별 진척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수백번의 실험을 거쳐 전지의 음극과 양극으로 이뤄진 셀(Cell)을 여러 겹으로 연결하는 폴더 투 폴더 방식을 이용하면 2차 전지 개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후 1년여 만인 99년 시제품 생산에 성공해, 지난해 7월엔 세계 최초로 리튬폴리머 전지 양산 체제를 갖췄다. 개발착수 후 4년 만의 일이었다.

2차 전지는 충전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전지로, 휴대전화·노트북·캠코더 등 주로 소형 가전과 모바일 기기의 핵심제품 중 하나다. 최근 삼성이 이건희 회장의 지시에 따라 D램 반도체를 이을 차세대 핵심 주력 상품으로 2차 전지를 선정하고 연구개발에 나서는 등 업계에선 누구나 눈독을 들이는 사업이다.

코캄의 개발성공 소식이 전해지자 지난해 1월에는 독일 아이오니티가 현금 24억원과 20년간 판매액의 2%에 해당하는 로열티를 지급키로 하고 기술을 사갔다. 洪사장은 외국업체의 기술모방을 방지하기 위해 세계 19개국에 특허를 신청했으며, 이 중 미국·러시아 등 4개국에선 특허를 획득했다.

그러나 최첨단 제품도 판로 개척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전지는 다른 제품과 달리 성능 테스트에만 최소 6개월 이상이 걸려 품질을 인정받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무명의 중소기업 제품이라는 것도 고객사의 신뢰를 확보하는 데 걸림돌이었다.

한데 이같은 문제가 외국에서부터 풀리기 시작했다.

올 3월 미국 유타주에서 열린 제6회 국제 초소형 비행기 경연대회(International Micro Air Vehicle Competition)에서 브리검영 대학교팀이 코캄의 배터리를 사용한 비행기로 1등을 차지했다.

"플로리다대 교수는 학회 발표에서 우리 제품에 '배터리의 혁명'이라는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후 세계 각국에서 주문이 폭주했다. 현재 코캄 2차 전지는 후지필름이 개발한 세계 최소형 6㎜ 두께 디지털 카메라에 채택돼 월 12만개가 납품되고 있으며 중국의 최대 휴대전화 생산업체인 커지엔(科健)에 월 20만개를 공급하고 있다.

이 밖에 국내 세원텔레콤·스탠다드텔레콤 등도 자사가 생산하는 휴대전화에 코캄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20억여원에 불과했던 배터리 매출이 올해는 2백50억원으로 10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洪사장은 "제품의 95%는 해외로 수출한다"며 "내년엔 국내 마케팅에도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판매가 급증하면서 월 1백만개 배터리 생산규모인 충남 논산 공장으론 모자라 내년 중 충북 진천에 8천평 규모의 세계 최대 배터리 생산공장을 건립한다.

洪사장은 "50억원이면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던 전지개발사업에 무려 3백억원을 쏟아부었다. 벌어들이는 돈보다는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던 분야에서 나름대로 한 획을 그었다는 점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takeit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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