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상식으로 뽑는 PD 감성·의식으로도 선발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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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달인들에게 물었다. 좋은 요리를 만드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공통적인 답은 좋은 재료를 쓴다는 것이었다. 좋은 요리는 좋은 재료로 만들 듯이 좋은 방송은 좋은 자질을 가진 사람이 만든다.

지난 일요일에 MBC 신입사원 필기고사가 있었고 이번 일요일에는 KBS에서 같은 시험이 있다. 뽑히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뽑는 사람도 책임이 막중하다. 그들의 의식과 안목이 결국은 시청자 삶의 질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내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고르는 게 아니라 시청자의 행복과 건강을 책임질 사람을 골라야 한다 (스타들이 사인해 주는 걸 옆에서 많이 지켜보았다. 흔하게 등장하는 표현이 "건강하세요"와 "행복하세요"다. 방송의 목표 역시 시청자들의 건강과 행복이 우선되어야 한다).

언론고시라는 말이 등장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PD를 선발하는 데 영어와 상식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묻는 사람도 더러 있다.

누가 모르는가. 이상적인 방법은 지망생들에게 모두 기획안을 써내게 하고 실제로 디지털 카메라 한대씩 쥐어주며 작품 하나를 만들어보게 하는 것이다.

짐작하듯이 두가지 면에서 어렵다. 지원자가 몇인데 그게 가능한 일이며, 가져온 작품을 꼭 그 사람이 만들었다고는 누가 보장하는가.

이런 우스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마라톤으로 예비 방송인을 선발한다면 이봉주·황영조 PD가 등장할 것이다. 바둑 실력으로 뽑는다면 이창호· 이세돌이 PD가 될 것이다.

왜 PD는 굳이 영어와 상식으로 1차를 거르는가. 마땅하게 거를 만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세계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영어와 상식이 그나마 필요한 것이다. 왜 그런 걸 공부해야만 하느냐고 의심하는 시간에 그걸 빨리 주머니에 하나씩 넣는 게 슬기로운 선택이다.

경쟁심 (경쟁력과 다르다) 강한 PD들이 너무 많은 게 방송 발전에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영어와 상식은 부족해도 감성과 의식이 아름다운 사람도 뽑아야 한다.

방송사에서 거의 두달여에 걸쳐 최종선발을 하지만 그래도 단순하고 황망하다는 느낌이 든다. 한번 뽑히면 독립해 나가지 않는 한 최소한 30년 동안 머물 사람을 너무 일사분란하게(?) 뽑는 건 아닐까.

방송사마다 신입사원 채용기구를 상설화하고 뽑는 방법도 이원화하자. 지금의 시스템과는 별도로 학기 초인 4월께에 미리 후보자들의 진솔한 자기소개서를 받는다. 왜 PD가 되려 하는지, 그리고 PD가 되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내용도 거기에 포함한다. 그것을 하루 이틀에 읽지 않고 전문가들이 꼼꼼히 밑줄 그어가며 읽는다. 각자의 전문성에도 귀를 기울이자. '이런 PD가 들어오면 과학다큐를 제대로 만들겠구나'하는 PD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 사람들에겐 영어와 학점· 상식의 그물은 면제해 준다.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들을 가려 여름방학 중에 워크숍을 실시한다. 그 중에서 걸러진 사람들을 몇달간 인턴 PD로 뽑아 집중적으로 관찰하자. 최종 순간에 소감을 쓰거나 말하게 해 종합점수에 포함시키고 영어와 상식으로 뽑힌 자들과 동등하게 대우하자.

그렇게 할 만한 예산과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 마라. 사실은 의지와 열정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뽑으나 이렇게 뽑으나 방송은 굴러간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이거 먹으나 저거 먹으나 배부르기는 마찬가지라면 우리에게 문화는 요원하다. 재료부터 좋은 걸로 써야 건강한 식단이 차려진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chjoo@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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