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문학 노벨상 조급증 털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매년 10월 둘째주 노벨 문학상 발표를 전후로 한국 문학과 언론은 "우리는 언제?"라는 '근심'에 휩싸인다. 이에 맞춰 매번 한국문학 번역 활성화 등의 정책적 방안이 대안으로 제출된다. 지난 28일 한국외국어대 외국문학연구소(소장 정영림)가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 '세계문학과 노벨문학상'은 노벨상과 비서구권 수상 작가의 관계를 탐구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나아가 노벨문학상에 대한 한국의 조급증을 털고 그 상에 대한 객관적 거리를 유지해 볼 수 있었다는 평이다. 참가자는 외국학자로는 홍콩 중문대의 팡쯔쉰(方梓勳)·독일 뮌스터대의 에른스트 리바트·일본 도쿄대의 안도 히로시(安藤宏)교수, 한국학자로는 영남대 노저용·한국외대 김희영·서울대 이성훈(강사)·한양대 서경석 교수 등이었다.

일본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수상작 『설국』)의 작품 경향과 노벨상 수상의 연관 관계에 관한 토론은 비서구권 문학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남겼다. 게다가 같은 동아시아권의 첫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를 놓고 한국 학자와 일본 학자 사이에는 큰 시각차가 존재했다.

한국외대 김희영 교수는 "노벨 문학상이 추구하는 보편성은 유럽 중심주의에 빠져 있다.

즉 중심적인 것(서구)과 주변적인 것(비서구)의 대립을 통해 유럽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다른 한편 타자의 문학도 존중하고 수용할 줄 아는 서구문학의 위대함을 확인시키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따라서 1968년 가와바타의 수상은 (일본문학의 위대함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일본적인 것에 대한 서구인의 취향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었다. 한양대 서경석 교수도 "『설국』은 일본인에 의해 쓰여졌지만 그것을 일본적이라 분별해낸 것은 서구인의 시각이었을 뿐이었다"고 동조했다.

이에 대해 도쿄대의 안도 히로시 교수는 "일본문학에 대한 서구의 시각에 이문화(異文化)에 대한 동경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와바타는 근대의 리얼리즘관과 인과론적 시간 의식을 무너뜨리고 불교 사상에 독자적 해석을 가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적 과제를 수행한 작가다. 그를 단지 오리엔탈리즘으로 논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반박했다. 나아가 그는 "현재 민족과 국경이란 개념의 허구성이 문제되지만 특수한 문화와 전통에서 보편성을 이끌어내는 발상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가와바타의 문학적 창조성이야말로 노벨 문학상 설립 취지에 가장 들어맞는다"고 평했다.

가와바타의 문학에 대한 이날 논의는 한국문학이 노벨상을 받기 위해 어떠한 전제 조건이 필요한가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전해줬다.

서교수는 "어떤 작품이 우리의 세계문학적 성과물인지에 대한 폭넓은 논의와 합의가 번역지원, 해외행사 등의 한국문학 알리기에 선행돼야 하며 이를 통해 선정된 한국 문학작품에 대한 우선 번역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한국리얼리즘문학의 시초를 이룬 염상섭·최서해·송영·한설야 등과 백석·이용악 등 뛰어난 모더니즘 시인에 대한 번역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의 작가들처럼 한국문학에도 근대화 과정에 대한 세계적 인식이 존재했으며, 활발히 번역된 김소월·한용운 등 '한(恨)에 기반한 정한'만이 한국문학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첫 발제자인 독일의 리바트 교수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는 해당 국가의 문학적 위계 질서와 다르게 수상되는 경우가 많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피터 한트케·엘프리데 예리넥 등 현재 독일 내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는 작가들은 외국에 잘 소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벨상과 거리가 멀다고 전제하면서 "노벨 문학상 수상을 과대 평가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항상 부분적일 뿐이며 공적 이해보다 사적인 이해를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우상균 기자

hothead@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