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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월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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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한 오페라 극장에서 대규모 인질극이 벌어져 1백70여명이 숨지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오래 전부터 러시아 정부에 맞서 싸우고 있는 체첸 반군들이 일으킨 인질극이었죠. 이번 주에는 인질극의 배경이 된 체첸 분쟁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시다.

1. 체첸은 어떤 곳이며 반군들이 원하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요?

우선 세계지도를 볼까요? 러시아의 남서부 국경지방에 카프카스란 이름의 산맥이 보일 거예요. 체첸은 이 산맥과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러시아의 자치공화국입니다. 이 지역엔 오래 전부터 나흐족이라 불리는 유목민족이 러시아와 독립해 살고 있었는데 1859년 러시아에 정복당했답니다. 면적은 우리나라 경상북도와 비슷하고, 인구는 현재 80여만명입니다. 러시아의 다수 종족인 슬라브족과 달리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고 있습니다.

체첸 사람들의 주장은 간단합니다. 원래 러시아와 민족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니 따로 나라를 만들어 살겠다는 거죠. 1991년 소련에 속해 있던 여러 공화국들이 독립했는데 이 기회를 틈타 체첸인들도 독립을 선언하고 러시아와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러시아 중앙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체첸 무장세력은 '반란군'인 셈이지만 체첸 민족의 입장에선 독립투쟁을 한다고 볼 수 있죠.

2. 러시아가 쉽게 독립 요구를 들어줄 것 같지 않군요. 그동안 러시아는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 왔나요?

러시아는 94년 11월 대규모 군대를 체첸 공화국에 파병했습니다. 이것이 제1차 체첸전쟁의 시작이죠. 러시아군은 한달여 만에 체첸의 수도인 그로즈니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지만 반군들은 남부의 해발 5천m에 이르는 카프카스 산맥 깊숙이 숨어 끈질기게 저항했어요. 장기전에 지친 러시아는 독립 여부에 대한 결정은 2001년까지 미루기로 하고 96년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던 보리스 옐친의 인기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다 99년 지금의 러시아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총리가 다시 15만명의 대군을 파병했습니다. 체첸 구석구석까지 빈틈없는 반군 소탕작전을 펼쳤어요. 이 과정에서 6만2천여명에 이르던 반군 가운데 겨우 4천∼5천명만 살아 남았다고 해요. 오랜 전쟁으로 체첸 인구의 20%에 가까운 20만명이 숨지고 30만명은 난민이 됐어요.

하지만 러시아의 피해도 어마어마했습니다. 두 차례 전쟁에서 2만명 가까운 사망자가 생겼죠. 또 무자비한 침공작전이 국제사회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아 궁지에 몰리기도 했고요. 그로즈니는 '러시아의 킬링필드'란 비판까지 나왔으니까요.

3. 세계에서 땅 덩어리가 가장 넓은 러시아에 비하면 체첸은 아주 작은 땅에 불과한데 왜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리면서 체첸 독립을 막고 있나요?

기본적으로 체첸은 카프카스 지방의 요충에 자리잡고 있어 그 규모에 비해 여러 모로 가치가 큽니다. 카스피해의 유전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러시아로 공급하는 송유관(파이프라인)이 체첸 지방을 통과하고 있어요. 만약 체첸이 독립하게 되면 거액의 송유관 통과료를 지불해야 하는 등 러시아로선 큰 손실을 보게 되겠죠. 체첸 공화국 안에 묻혀 있는 석유도 상당한 편입니다.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로는 다민족 연방국가인 러시아가 안고 있는 고민을 들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러시아는 슬라브족이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서부 국경지대에는 소수민족들이 21개의 자치공화국을 이루어 살고 있는데 만약 체첸의 분리독립이 이뤄지면 다른 민족도 마찬가지로 독립을 요구하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데 러시아의 고민이 있어요. 실제로 체첸 바로 옆에 있는 다게스탄이나 북오세티야 지역에서도 소수민족의 비율이 높아 독립의 열기가 높답니다.

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 등 모두 15개 공화국이 분리독립하는 것을 지켜본 러시아로선 더 이상의 분리독립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4. 체첸 반군과 테러 단체 알 카에다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과연 그런가요?

체첸에서는 이슬람교의 교리를 절대적으로 따르고 다른 종교와 이념은 철저히 배격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 상당히 강한 편입니다. 1980년대 후반 이슬람 원리주의가 중동지방으로부터 체첸으로 전파돼 오면서 세력이 커졌어요. 당시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이른바 페레스트로이카란 개혁정책을 추진하면서 종교활동이 자유로워진 점도 있고요.

94년 체첸 전쟁이 터진 이후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가했던 많은 이슬람 전사들이 자발적으로 체첸에 모여들어 체첸 독립을 위해 싸우기도 했어요. 이때 과격한 사상을 가진 테러리스트들도 함께 체첸으로 섞여 들어왔다고 합니다. 테러 집단의 입장에서 보면 험준한 산악지방이 많은 체첸은 활동하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거죠. 최근엔 아프가니스탄에 숨어 있던 알 카에다 대원들이 미국의 공격을 피해 체첸에 숨어 들어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유를 들어 미국은 지난해 9·11 테러 이후 갑자기 태도를 바꿔 러시아의 체첸 공격을 묵인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미국이 직접 그루지야에 특수부대를 파견해 체첸 반군을 압박하고 있기도 하고요.

5. 평화적인 해결책이 나오는 게 쉽지 않아 보이는군요. 앞으로 체첸 분쟁은 어떻게 될까요?

푸틴 대통령은 체첸 분쟁 해결을 임기 중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협상이 아니라 무력을 통한 해결을 의미해요. 많은 러시아인들은 체첸전쟁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인 옐친 전 대통령과 달리 강력한 러시아를 내세우는 푸틴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인질 사건으로 아무런 죄도 없는 극장 관객들이 상당수 희생됨에 따라 강경 진압을 주장하는 러시아 국민의 여론이 당분간 높아질 것 같군요. 하지만 반군들의 입장은 매우 완강합니다. 반군 사령관인 샤밀 바사예프는 "러시아 군대가 체첸 땅에서 물러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요. 지금으로선 평화적인 해결 전망이 좀처럼 보이지 않아요.

유일한 가능성은 96년 양쪽이 평화협정을 맺었던 것처럼 유엔과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평화안을 만드는 방법이죠. 러시아와 체첸 양쪽을 만족시키려면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놓고 단계적인 방법으로 체첸의 독립을 허용하되 소련에서 독립한 나라들이 만든 독립국가연합(CIS)처럼 러시아와 체첸이 안보분야 등에서 계속 연계를 갖도록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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