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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변하고있는여성들]①당찬 초·중·고여학생들-여학생은공차기,남학생은'고무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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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2학년 때까지는 비슷했는데 남자애들은 점점 약해지고 여자애들은 갈수록 거칠고 대담해져요. "

서울 원광초등 4년 권정효양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축구를 한다. 경기할 때는 남학생·여학생 구분이 없다. "기술은 남자가 좀 낫지만 여자는 더 열심히 뛰면서 체력으로 승부한다"는 게 권양의 설명이다.

연령이 낮아질수록 남녀의 성역할에 대한 편견과 구별이 사라지고 있다. 여성이라는 피해의식이 없고 여성성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는 게 교사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성(性)차가 사라진다=지난 26일 서울 당곡중학교 3학년 한 학급의 체육시간. 축구 대신 고무줄 놀이를 선택한 남학생 3명은 '산골짝의 다람쥐'노래를 부르며 여학생들 사이에 끼었다. 몸이 안좋아 쉬고 있는 아이들은 남학생이 더 많았다.

체육교사 전호정(27·여)씨는 "팀별 경쟁을 하는 게임에서는 여학생들이 더 도전적"이라고 전했다.

여학생은 가정, 남학생은 기술이라는 공식도 깨졌다. 교육부가 지난해 대전 신탄진 중앙중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학교에서 남학생이 바느질이나 요리를 배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란 질문에 대해 '매우 그렇다'는 응답이 86%였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3%에 그쳤다.

남학생 일색이던 과학 교실도 남녀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초등생 과학 교육기관인 '과학싹 틔움터'의 이평우 교육팀장은 "2년 전부터 저학년 과학교실의 절반은 여자 어린이"라고 전했다.

◇남학생 압도하는 여학생들=여학생들의 기(氣)가 세지자 요즘 초등생 아들을 둔 상당수 부모들은 고민이 많다. 아들이 학교에서 여자 아이들에게 맞고 오거나 주눅 들어 오곤 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치마를 입는 여자 아이들은 거의 없다.

경기도 과천 문원초등 6년 최유리양은 "치마를 입고 오면 공주병이라는 말을 듣는다"며 "남자 아이들이 옷·머리 염색 등 외모에 신경을 더 쓴다"고 말했다.

중·고교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 한강중 1년 김도형양은 "교복이 치마만 아니었어도 남자아이들과 함께 말뚝박기나 축구를 하고 놀텐데 안타깝다"며 "여학생들끼리만 있으면 치마를 입고도 말뚝박기를 한다"고 말했다.

이성 관계도 여학생이 주도한다. 고교생 아들을 둔 김혜영(42·서울 잠원동)씨는 "남자 아이들은 좋아하는 감정을 먼저 표현하기 두려워하는 반면 여자 아이들은 훨씬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은 더 그렇다. 서울 성동초등 5년 안민형양은 "남자 아이들은 소극적이라 데이트 장소와 방법은 거의 여자가 결정한다"고 말했다.

여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편견도 깨지고 있다. 경기도 수원 신곡초등학교의 반장 85명 중 46명(54%)이 여학생이다. 전교 어린이회장 이예빈(6학년)양은 "여학생 임원들이 더 적극적"이라며 "선생님들에게서 '여인 천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제주 한림고교는 지난해 처음 남녀 혼성반을 편성한 뒤 1학년 6개 학급 중 4개 학급의 반장을 여학생이 맡았다.

각종 클럽이나 동아리 활동도 여학생들이 이끈다.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의 청소년 위원회 47명 중 여학생이 26명(55%)이다. 위원회에서 선발된 임원 9명 중에도 여학생이 6명이다. 교육부 초등교육과 전병식 장학사는 "초등학교뿐 아니라 고등학교까지 여학생들이 적극적이고 공부도 잘한다"며 "이 아이들이 성장하면 여성 주도적인 사회가 오리라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양성 평등, 꿈★은 이루어진다=여학생들이 성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당당해진 것은 한 자녀 가정이 많아 부모들이 남·여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키운 영향이다.

또 교육부는 몇 년 전부터 양성평등 교육을 강화했다. 지난해 전국 초·중·고교에서는 2000년의 4.6시간보다 크게 는 연간 8시간의 성교육을 실시했다. 성교육의 기본은 '양성평등 교육'이기 때문에 학생·교사의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학교에서의 여·남 관계가 달라지는 데 한몫 한다.

서울 미동초등학교 정지성 교감은 "아이들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으로 양성 평등이 진행된다고 보기엔 미흡하다는 견해도 있다. 내일여성센터 김영란 성상담소장은 "당당하던 여자들이 사랑에만 빠지면 수동형·내숭으로 돌아가는 등 매스컴과 부모의 모습을 통해 배운 성역할 행태를 따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같은 잘못을 해도 남학생을 혼내고 남자에게 더 힘든 일을 시키는 등의 교육 방식은 개선되지 않아 남학생들이 피해의식을 갖게 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여성개발원 유희정 연구위원은 "아이들의 변화 만큼 가정과 사회에서도 빨리 양성평등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better@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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