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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코미디 몽정기>'사랑' 발산하는 사춘기 악동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1면

섹스 코미디는 다루기 힘든 장르의 하나다. 성(性)이라는 미묘한 소재를 어떤 수위까지 표현하느냐가 관건이다. 성은 인간의 욕망 가운데 가장 원초적인 것임에도 대놓고 드러내기엔 이런 저런 제약이 많다. 자칫하면 말초적 감각만 자극하는 싸구려 영화로 전락하기 쉽다. 절대 고상하다고 말할 수 없는 성을 다루되 이를 천박한 수준으로 떨어뜨리지 않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한국판 '아메리칸 파이'라고 할 수 있는 '몽정기'(감독 정초신)의 딜레마도 바로 여기에 있다. 손만 대면 톡 터질 것 같은 에너지로 충일한 10대 남학생의 성적 갈등과 환상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영화에서 별로 시도하지 않았던 10대의 성을 코믹하게 표현하면서도 개그식 헛웃음만 넘치지 않게 하는 드라마를 갖춰야 하는 것이다. 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보수적 시각도 부담이다.

'몽정기'는 이같은 현실적 재연과 영화적 과장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친구의 어머니와 관계하거나, 콘돔을 풍선 삼아 불어대는 '아메리칸 파이'의 엽기적 화면은 자제했지만 그래도 성을 원색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 숱하게 나온다.

때론 유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의 시선을 잡기 위한 인위적 영상이 거슬린다. 예컨대 남녀의 성기를 연상케 하는 각종 사물을 대담하게 노출시키고, 성교에 관련된 여러 비속어·은어를 거침없이 내뱉는다.

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똘똘 뭉쳤지만 구체적인 지식은 거의 없는 중학생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감안해도 다소 지나치고 노골적이지 않나 하는 의문을 지워버릴 수 없다.

'몽정기'는 왁자지껄한 내용을 순정만화 같은 분위기로 순화시킨다. 시대적 배경을 1980년대로 설정해 복고풍 느낌도 첨가했다. 포르노 사진 한장만 있으면 친구들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았던 근(近)과거를 무대로 삼아 기성세대도 자신의 젊었던 한때를 풋풋하게 회상할 수 있도록 유인한다. '교실붕괴'란 괴상한 단어가 아직 나오지 않았던 시절이다.

몸은 어른처럼 컸지만 마음은 아직 어린 중학생 네 명(노형욱·전재형·정대훈·안재홍), 여학생 시절 짝사랑했던 선생님과의 사랑을 이루려고 교직을 선택한 수학 교생 유리(김선아), 키도 작고 무뚝뚝해 매력이라곤 찾기 어려운 노총각 담임 병철(이범수)이 유쾌한 삼각 관계에 빠진다.

교육실습생 선생님을 '성의 우상'으로 삼아 덤벼대는 학생들, 옛 은사에 대한 첫 감정을 가슴 깊이 간직한 교생, 옛 제자의 사랑을 나 몰라라 무시하는 교사가 서로 엇나가는 사랑 게임을 하는 것이다. 질퍽한 농담과 끈적한 화면이 연속되면서도 이들 모두는 순정파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결코 밉지 않다. 2년 전 좌충우돌 은행털이 범죄극 '자카르타'를 무난하게 엮어내며 히트시켰던 정초신 감독의 대중적 감각이 이번에도 확인된다.

화면의 일관성은 빈약한 편이다. 서울 올림픽 개최 시기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월드컵 응원 구호 '대∼한민국'의 리듬이 흘러나오고, 최근 인기를 끈 엽기 DJ 배칠수도 등장한다. 버스 정류장, 영업용 택시도 모두 요즘 것들이다. 사소한 부분일 수 있으나 그만큼 정성을 기울이지 않았거나, 혹은 상업적 흥행을 필요 이상으로 의식한 결과일 것이다.

충무로의 감초 스타 이범수나 CF 스타 김선아의 호흡은 비교적 안정적이다. 악동 중학생을 연기한 무명 배우 네 명도 신인치고는 자기 배역을 제대로 소화했다. 영화의 압권은 막바지에 배치한 엽기 가수 싸이의 등장이다. 그 자리에서 폭소가 터진다. 덕분에 마무리는 말끔한 느낌을 준다. 성이 공기처럼 흘러다니는 시대, 이 시대의 조숙한 청소년들이 20여년 전의 '몽매한' 성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다음달 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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