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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은 축소지향적인 변신이 아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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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호 24면

박용만 두산 회장

Q.구조조정의 귀재로서 구조조정을 나름대로 어떻게 정의합니까? 구조조정을 왜 하나요? 어느 때 해야 하나요? 구조조정은 모든 기업이 상시적으로 해야 합니까? 구조조정과 M&A는 어떤 관계에 있나요?

경영구루와의 대화<13> 박용만 두산 회장①

A.구조조정이란 기업의 미래가치를 끌어올리는 기업 활동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입니다. 방법론상 유기체적(organic)인 방법과 비유기체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비유기적체인 구조조정이 바로 기업을 사고파는 M&A죠. M&A는 말하자면 구조조정의 주요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구조조정의 목적과 시기, 구조조정의 핵심적 도구인 M&A, M&A의 관건인 합병 후 통합(PMI), 구조조정에 필요한 리더십, 상시적인 구조조정 시대의 인재상 순으로 구조조정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우선 구조조정이라는 용어와 관련한 두산의 ‘원죄’부터 고백하고 싶군요. 흔히 구조조정이라고 하면 축소지향적인 변화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생존을 위해 기업과 자산을 매각한 두산의 1차 구조조정과 무관치 않습니다. 10여 년 전 우리는 한국네슬레, 한국3M, 한국코닥 등을 매각하고 본사 빌딩과 OB맥주 영등포공장을 팔아치웠습니다. 차입금 구조, 맥주시장의 경쟁상황 등을 따져보니 두산의 미래가치가 당초 우리가 전망한 대로 성장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죠. 실은 매출 둔화로 미래가치가 떨어져 막대한 차입금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당시 우리의 판단이었습니다. 이런 위기감에서 1995년 11월 우리가 1차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단의 활동을 국내 최초로 구조조정이라고 명명한 겁니다. 서양의 다국적기업들이 하는 리스트럭처링을 이렇게 번역한 것이죠. 그 바람에 구조조정 하면 팔고 줄이는 것이란 인식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4차에 걸친 두산 구조조정의 전 과정을 놓고 보면 사업의 포트폴리오가 재편되기도 했지만 엄청난 확장이 일어났습니다. 구조조정은 축소지향적인 변신이 아니라는 거죠.

구조조정은 왜 하는가? 구조조정의 목적은 기업의 미래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업을 하다 보면 당초 예측한 미래가치를 달성하기 어려운 쪽으로 환경이 바뀌거나 또는 미래가치를 더 끌어올릴 필요가 생깁니다. 그래서 구조조정을 하게 되죠. 구조조정의 주요 변수로는 경기 사이클의 변동, 경쟁사가 주도하는 경쟁상황의 변화, 기술의 발전 등이 있습니다.

먼저 경기 사이클이 불황으로 가는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A사가 5년 후 기업 가치를 1조원으로 전망했다고 가정해 보죠. 그런데 이 회사가 영위하는 사업이 저성장 불황기로 접어들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미래의 수익 가치가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이때 미래의 수익가치를 유지하고 더 나아가 키우려면 선제적으로 비용을 낮춰야 합니다. 수익성을 떨어뜨릴 것 같은 특정 사업을 포트폴리오에서 배제할 수도 있겠죠. 경기 순환의 악영향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방어 목적의 구조조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경쟁상황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A사와 경쟁관계에 있는 미국 기업 B사가 생산 거점의 상당 부분을 멕시코로 옮기기로 한 것입니다. 임금이 낮은 멕시코에서 같은 제품을 만들어 팔면 원가의 구조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죠. 경쟁사가 생산의 방식을 바꾸어 시장의 질서를 바꿔 놓기로 한 겁니다. 이에 따라 B사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A사는 중국의 공장을 인수해 생산시설의 일부를 이쪽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빠져나간 공장엔 고부가가치 제품의 라인을 깔기로 했죠. 이때 외부의 중국 공장을 사들이는 것이 비유기체적인 구조조정, 내부적으로 국내 사업을 일부 철수시키고 고부가가치 제품에 진출하는 게 유기체적인 구조조정입니다.

셋째로 기술의 발전에 따른 구조조정을 예로 들어 보죠. 앞으로 새로운 기술이 나와 훨씬 적은 비용으로 같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막대한 선투자를 해야겠지만 이 기술을 도입하면 경쟁시장에서 유리해지죠. 이 기술이 상용화되는 데는 3년이 걸릴 것 같습니다. A사는 미래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지금부터 현금 비축에 들어갑니다.

비용 절감이든, 생산기지의 이전이든, 기술 투자든 구조조정은 이렇게 미래의 가치를 내다보고 선제적으로 벌이는 활동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구조조정은 언제 하는가? 구조조정은 상시적으로 하는 겁니다. CEO를 정점으로 하는 경영진은 현재 수익관리는 물론이고 미래의 수익관리도 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현재의 기업가치를 보호하는 것보다 미래의 가치를 보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영진에 대한 보상체계에 장기 공헌에 대한 인센티브를 포함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죠. 대표적인 게 스톡옵션입니다. 회사의 미래가치를 끌어올리고 그것이 주가에 반영됐을 때 그 차액을 보상으로 받는 게 스톡옵션이거든요. 미래의 수익가치를 선제적으로 현재에 보전하는 활동에 대해 보상하는 것이죠. 경영진이 상시적으로 미래 가치를 보전 내지 높이는 활동을 하려면 구조조정이 항상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구조조정 업무 수행에 필요한 자질로는 팩트 베이스로 판단하는 능력, 냉철한 자세, 일관성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현재 시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미래 사업의 가치를 팩트에 근거해 판단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대체 팩트를 근거로 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지나친 기대, 직관, 감상 그리고 기업 내 성역 같은 것들이 개입할 수 있습니다. 저는 트위터를 통해 익명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무엇보다 재미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어느 날 정보기술(IT)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나서면 안 됩니다. 미래가치를 높이려고 애써 구축한 포트폴리오를 제가 해 보고 싶다고 해서 뒤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기업 활동에 요행이란 없습니다.

냉철한 자세는 고통을 감내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구조조정으로 변화가 일어나면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릅니다. 사고방식과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있는 것을 내다파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익숙하지 않은 것을 다루는 일도 얼마간 고통을 수반합니다. 냉철하지 않은 사람은 이때 고통을 회피하는 방향으로 운신하게 마련입니다. 그 결과 애초에 예측한 수준의 미래가치를 실현할 수 없게 되죠.

일관성이 없으면 미래가치를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동력이 떨어지거나 중도에 포기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CEO가 자기 기만을 경계해야 합니다. 자기 경계에 자신이 없으면 시스템을 만들고, 혼자서 할 게 아니라 팀을 구성해야죠. 아래서 올라오는 건강한 의견을 여과 없이 수용할 수 있는 창구를 개설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사람은 이런 보완 장치를 만드는 것도 싫어하더군요.



기획·정리=이필재
포브스코리아 경영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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