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 현명한 선택이 과도한 경품경쟁 막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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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신문을 많이 구독하는 국민들이 많을수록 그 나라는 잘 사는 국가다."

세계신문협회(WAN)가 최근에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인구 1천명당 신문구독 인구는 노르웨이가 7백20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는 일본 6백69명, 핀란드 5백45명, 스웨덴 5백41명, 스위스 4백54명, 영국 4백9명, 독일 3백75명, 싱가포르 3백65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세계 최고의 개인 소득을 자랑하는 잘 사는 나라들이다.

21세기에 정보와 지식은 권력이 될 수 있고, 재화와 문화 상품이 되기도 한다. 현대사회에서 정보와 지식을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주 매체는 신문이다.

또 시민들의 일상 대화 내용 중 80%가 매스미디어를 통해 보고, 들은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신문은 미디어 중에서 그 사회 어젠다를 설정하는 주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선진국들은 신문산업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물론 사이비 신문까지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로운 시장 경쟁 체제하에서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강한 신문을 지원하고, 신문산업 전반의 발전을 위해 세제 혜택 등을 주기도 한다.

선진국 신문사들도 법적 테두리 안에서 판촉을 위해 경품을 주거나, 무가지를 일정기간 배포해 잠재독자를 개발하고 있다. 세계적인 권위지인 미국의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등은 시계·점퍼 등을 경품으로 주고 있고, 2개월간 무가지를 배포하여 독자를 확대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신문의 판매 현실은 어떤가. 많은 신문사들은 사고(社告)를 통해 다투어 자사지를 정론지 혹은 권위지라고 홍보하면서 연예스포츠지보다 싼 값에 팔고 있다. 세계 어디에도 정론지를 황색지보다 싸게 파는 나라는 없다.

또 엘리트라고 자부하는 수백명의 기자와 칼럼니스트들이 열정과 땀으로 만든 신문을 '중국산 자전거'에 끼워 팔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는 신문업계 전체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자해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신문사들의 과당 판촉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보급과 판촉을 담당하는 지국과 본사의 특수관계에도 원인이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는 한국 같은 형태의 지국은 없다. 단순히 배달만 의뢰하고 있다. 선진국 신문사들은 전체 독자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관리하고 있으며,본사가 직접 판촉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의 사태로 신문사들은 중국산 자전거 판매점이 됐다는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나아가 정부가 신문 시장의 정상화라는 명분으로 신문시장에 개입해 언론을 통제할 위험이 있는 신문고시 제도를 정당화시켜 줄 수도 있다. 정치 권력이 언론에 개입해서는 안되고, 선진 외국에서와 같이 신문사들 스스로 자율 규제로 문제들을 풀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스스로 자율 규약을 준수하지 않으면 공권력이 개입할 수 있는 빌미를 줄 수 있다는 허친스 보고서 '자유롭고 책임있는 언론'의 경고를 신문사들은 잊어서는 안된다.

마지막 희망은 독자들이다. 막걸리 한 잔이나 고무신 한 켤레에 자신의 표를 팔던 유권자 시대가 지난 것같이, 선풍기나 자전거에 매혹되어 질과 품격을 따지지 않고 신문을 선택하던 독자들은 곧 사라질 것이다. 이제 독자들이 현명하게 판단할 시기다.

미디어 전문기자 tw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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