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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盧·鄭 후보단일화 가능할까-두자릿수 지지율… "포기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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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민주당 노무현(盧武鉉)대통령후보와 '국민통합21'의 정몽준(鄭夢準)의원 간 후보 단일화는 대선의 으뜸 관심사다. 여론조사는 단일화가 될 경우 선두가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鄭의원으로 단일화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후보와 양자대결을 벌일 경우가 더욱 그렇다. 이때는 다자대결에서 선두인 李후보를 鄭의원이 4.5∼7.5%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을 비롯한 반(反)이회창 진영엔 엄청난 유혹이다. 이같은 희망은 '4자연대 공동신당 추진' 등 다양한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때마다 정국은 요동쳐 왔다.

하지만 후보단일화는 한걸음 나아가는 듯하다가 물러서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역사성과 통계, 명분과 실리, 후보 간 이질성 등 많은 부분에서 조건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역대 대선은 어느 한쪽이 바닥권으로 추락하지 않는 한 단일화는 어려움을 보여준다. DJP 단일화가 이뤄졌던 1997년 대선 때 김종필(金鍾泌)후보의 마지막 지지도는 3.3%였다. 같은 해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의 손을 들어준 민주당 조순(趙淳)총재는 최종 지지율이 4.1%였다.

여론조사가 도입된 이래 어떤 대선에서도 지지도가 두자릿수, 즉 10% 이상인 후보가 중도에 포기한 사례는 없다. 97년의 이인제(李仁濟)후보는 최고 30%대의 지지도를 보였다. 92년의 정주영(鄭周永)후보는 13.5%, 박찬종(朴燦鍾)후보는 11.3%(미디어 리서치)의 평균 지지도를 유지했다. 87년 대선에서 출마를 강행한 YS·DJ의 지지도(한국갤럽)는 28.4%, 27.5%였다.

그러면 盧·鄭 두 사람 가운데 지지도가 10% 미만으로 추락할 후보가 있을까.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부정적이다. 중앙일보의 안부근(安富根)여론조사 전문위원은 "盧후보는 호남 고정표와 젊은 층, 鄭의원은 기존 정당 혐오층을 기반으로 갖고 있어 후보등록 이전에 10% 아래로 폭락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단일화의 또 다른 핵심변수는 명분이다. 87년 YS와 DJ에 대한 단일화 요구엔 25년 간의 군사정권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명제가 있었다. 97년 DJP 연합도 첫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명분이 먹혔다. 그러나 盧·鄭 단일화론은 '반(反)이회창 연대'에 불과해 그다지 호소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물론 단일화 추진파는 "수구냉전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민주당 金元吉)라거나, "낡은 냉전회귀 세력에 맞선 민주평화개혁 세력의 후보단일화"(국민통합21 金民錫)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4억달러 대북 지원설, 북한 핵 등 메가톤급 파문에 묻힌 단일화 논리의 체감지수는 높지 않다.

단일화 찬성 30.6%, 반대 47.6%의 여론조사(10월 19일,한국갤럽) 결과는 盧·鄭 단일화의 경우 자칫 역풍(逆風)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둘의 살아온 길, 이념적 동질성, 친분관계, 상호 보완 가능성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盧후보는 鄭의원을 "부족한 것 없이 살아온 부잣집 아들"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서민이 찍을 후보가 없는 상황을 막기 위해 끝까지 갈 것"이라고 했다. 측근인 천정배(千正培)의원은 "鄭의원과 이회창 후보 중 누가 더 개혁적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하는 등 이질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반면 지지도가 앞서는 鄭의원은 적극적이다. "盧후보가 나보다 왼쪽에 있지만 얼마든지 포용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鄭의원도 盧후보로의 단일화는 아예 상상도 하지 않고 있다.

한국갤럽 연구본부의 허진재(許珍宰)차장은 "盧·鄭후보는 유사성이 거의 없는 데다, 보완적 관계라기보다 서로 표를 잠식하는 점이 단일화를 불투명하게 한다"고 분석했다.

실리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盧후보는 대선 승패와 별도로 민주당의 개혁을 추진할 뜻을 밝히고 있다. 盧후보는 "대선에 실패하더라도 정치는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기득권 포기를 전제로 한 단일화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통령-책임총리'의 빅딜에 대해서도 盧후보는 "밀실정치"라며 "원내 다수당에서 추천하는 인사를 총리로 지명할 것"이라고 선언해 놓은 상태다.

盧후보 측 김경재(金景梓)의원은 "설혹 야당을 하더라도 2004년 총선에선 거대여당 견제심리로 제1 야당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鄭의원도 "떨어지면 국회의원 재·보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선언해 놓았다. 鄭의원의 경우 기성정치와의 차별성과 참신한 이미지를 주력 상품으로 제시하고 있어 단일화 조건을 논의하는 협상 자체가 어려운 형편이다.

결국 합의에 의한 단일화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가능성은 막판 표쏠림에 의한 '사실상의 단일화 현상'이다. 민주당 정세분석가인 김영환(金榮煥)의원은 "2강 1중의 현재 구도가 2강 1약으로 가면 사실상의 후보단일화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 지지층의 반창(反昌)의식은 친노(親盧)·친정(親鄭)성향보다 강해 급격한 막판 표쏠림이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별도로 지지율 변화로 인해 '누구로 단일화를 하든 이회창 후보가 이길 것'이라는 결과가 나오면 새 국면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鄭의원의 경우 자신의 현대중공업 지분, 형제들의 현대그룹, 아버지 정주영씨의 낙선 악몽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다만 이 때는 단일화가 아닌 일방적 사퇴의 모양이 될 가능성도 있다.

盧후보의 경우 도전적이고 원칙론자의 면모가 있어 언제 어떤 선언을 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 남은 변수다.

대선 최대 이슈인 盧·鄭 단일화엔 이같은 다양한 추진요인과 장애요인이 얽혀 있다. 단일화 추진파의 입장에서는 그 종착지가 '사막의 오아시스'가 될지 아니면 한가닥 신기루에 그칠지는 지켜볼 일이다.

최훈 기자

choihoon@joongang.co.kr

<글싣는 순서>

1. 정몽준 바람 계속 불까

2. 이회창 40% 벽 뚫을 수 있나

3. 박근혜 누구와 손잡을까

4. 노무현과 정몽준 후보단일화 가능할까

5. 김심(金心)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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