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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 장소는 침실 아닌 마당…일제, 알고도 사건 은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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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명성황후 시해사건(1895년) 당시 명성황후는 자신의 침실이 아닌 마당에서 시해됐으며, 시신은 지금의 청와대 춘추관 자리인 녹산(鹿山) 남쪽에서 불태워졌음을 보여주는 일본 측 사료가 공개됐다.

서울대 이태진 교수(한국사)는 사건 당시 경성(서울) 주재 일본 일등영사 우치다 사다쓰지(內田定槌)가 1895년 12월 21일자로 작성해 외무성 차관에게 제출한 '한국 왕비 살해 일건(一件) 제2권'(사진)이란 문건을 일본 외무성 부설 외교사료관에서 찾았다고 13일 밝혔다.

이에 따르면 일본 낭인들은 1895년 10월 8일 새벽 명성황후의 침소인 건청궁(乾淸宮)에 침입해 명성황후를 건청궁 내 장안당(長安堂)과 곤령합(坤寧閤) 사이 뜰로 끌고 나와 시해했다. 시신은 곤령합 동쪽 건물인 옥호루(玉壺樓) 방 안에 안치했다가 건청궁 동쪽의 인공산인 녹산 남쪽에서 불태웠다.

'한국 왕비 살해…' 문건은 지난해 국사편찬위원회가 발행한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 소장 한국 관계사 목록'에 제목이 실려 있으나 내용이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처음이다.

이태진 교수는 "보고서 내용으로 보아 일본 정부는 명성황후 살해범 재판 전에 이미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그런데도 보고서가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은 것은 일본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홍순민 교수(명지대.한국사)는 "시해의 책임 소재가 궁극적으로 일본 정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는 자료"라며 "학계의 논란거리인 시신의 향방이 구체적으로 규명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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