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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黨政분리' 고수하는 獨 녹색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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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독일의 정치 스펙트럼에서 녹색당은 통상 사민당 왼쪽에 위치한다. 녹색당이 사민당보다 더 좌익이라는 얘기다.

유럽에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사민당은 이제 누가 뭐래도 중도좌파를 대변하는 정당이 됐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좌우의 구별이 모호할 정도로 좋게 말해 '탄력 있는' 정치 집단으로 변했다. 그러나 1980년대 등장한 녹색당은 쉽게 말해 좌파 원리주의에 가깝다. 녹색당 주요 인사들은 대개 70∼80년대 골수 학생·환경 운동가 출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녹색당이 정치 현실을 무조건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으로 두 번씩 집권에도 성공한 만큼 교조적 좌익 이념에만 매달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격렬한 내부 투쟁을 거치긴 했지만 전후 최초로 독일군의 해외 파병이나 나토의 유고 공격에 찬성한 것 등이 대표적 예다.

그렇다면 녹색당도 변하고 있다는 얘긴가. 이젠 툭하면 노조와도 다투는 사민당이 그랬던 것처럼 순수 좌파 노선보다는 현실 정치적 판단을 우선하는 보편적 정당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일까.

지난주 말 브레멘에서 열린 녹색당 전당대회는 이런 의문을 부질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지난달 총선에서 사상 최고의 득표율을 기록, 적녹연정의 재집권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녹색당의 이번 전당대회는 '잔치 한마당'이 아니었다. 대의원들은 19일 치열한 노선투쟁 끝에 결국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결론을 내렸다. 당정(黨政)분리 강령을 고수키로 한 것이다. 녹색당의 당정분리 강령은 당 지도부의 내각 참여는 물론 의원 겸직까지 금지하고 있다. 녹색당의 간판 스타인 요슈카 피셔 외무장관이 '무당직'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전당대회 결정으로 총선 승리의 주역인 프리츠 쿤과 클라우디아 로트 공동당수는 당수직을 내놓게 됐다. 둘 다 의원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이들이 빠질 경우 지도부가 너무 취약해진다는 우려와 함께 당정분리 강령을 폐기하자는 주장도 물론 많았다. 그러나 대의원들은 '당이 일상 정치와 떨어져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추구할 수 있다'며 힘든 결정을 내렸다. 당의 권력화는 필연적으로 부정부패로 이어진다는 게 이들의 소신이다. 부정부패에서 비켜가기 힘든 기존 정당들과 다시 한번 분명히 선을 그은 녹색당의 원칙 고수가 신선하게 느껴진다.

jsy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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