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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장사꾼 박상원 "상상이 되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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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반듯하다, 따뜻하다, 깔끔하다, 부드럽다, 진지하다….

박상원(43)을 떠올릴 때 느낌은 대충 이쯤 될 듯싶다. '여명의 눈동자'에서는 따뜻했고, '모래시계'에서는 진지했고, '가을에 만난 남자'에서는 부드러웠다. 어느 배역 하나 욕먹지 않았다. 고정된 이미지에 식상해질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아주 미세하게 자신의 모습을 바꿔갔다.

그런데 감질났던 것일까. 박상원이 이번엔 확 변했다. 그것도 동시에 두가지 모습으로. 얼마전 시작된 SBS 사극 '대망'에서 냉정하고 때론 비열한 조선시대 거상(巨商) 휘찬으로 변신했다.

사극도 처음이지만 악역 또한 생소하다. 시청자들이 화들짝 놀라는 것도 잠시, 그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오는 11월 2일 방송되는 SBS 주말극 '흐르는 강물처럼'에서다.

"두 작품을 동시에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하지만 그리 부담스럽진 않아요. '대망'은 1년 전부터 준비해온 터라 지금은 익숙해졌고, 새 주말 드라마의 '쿨'한 남자는 원래 제 전공이잖아요(웃음)."

'대망'에서 휘찬은 중인 집안에서 태어나 오로지 야망과 추진력으로 거부의 반열에 오르는 지략가다.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을 돈에 두기에 비열해 보일 수도 있지만 게의치 않는다. 오히려 냉정하고 당당한 모습이 맘에 든다고 한다.

처음 해보는 사극이니 만큼 힘든 점도 많다. 수염 붙이고 옷 갈아 입는 데 한 시간 넘게 투자해야 하고, 얼굴 표정 변화 없이 입으로만 대사를 말하는 장면이 많아 온몸이 경직되기 일쑤라고 한다. 그래도 그는 그간 맡았던 어느 배역보다 '대망'의 휘찬에 푹 빠져있다. 작가·PD·스태프와 연기자가 오랫 동안 공들여 준비해온 데다 자신의 연기생활에선 큰 변화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모던(modern)'한 이 남자가 갓 쓰고 수염 달고 나타났을 때는 분명 이유가 있었으리라.

"캐스팅 제안이 왔을 땐 좀 꺼려졌어요. 저에게 사극이라니요. 하지만 관점을 달리해서 보니 기회가 되겠다 싶더군요. 현대극에서 악역을 맡았다면 어색했겠지만 완전히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라면 충격도 덜하지 않을까요."

냉철한 계산이었고 의도는 맞아떨어진 듯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인간시장' 시절부터 대본을 차곡차곡 모아왔다. 그런데도 정작 드라마는 보지 않았다. "창피하고 두려워서"다. 그런데 이번 '대망'에서는 1·2편 모두를 TV로 모니터했다. 그만큼 자신감이 생겼고 연기가 편해졌기 때문이다.

"TV로 제 모습을 본다는 게 여전히 낯설긴 하지만 재밌는 일이기도 했어요. 아, 저 장면을 찍을 때는 이런 느낌이었지, 저 장면에선 NG가 났었지, 하고 곱씹어 보는 맛이 그만이던데요."

일 끝나고 쉬는 기간엔 뭘 할 거냐는 질문에 속사포처럼 터져나오는 그의 대답. "일 안할 때가 더 바빠요." 대학(서경대 연극영화과)에 출강하랴, 낚시하랴, 친구들 대소사 챙기랴, 아이들과 놀아주랴,… 쉴 틈이 없단다. 그러다보니 "연기하는 게 오히려 휴식"이란다.

박지영 기자 naz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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