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예술에 순교한 요절 화가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7면

이중섭 40세, 손상기 39세, 나혜석 52세, 최욱경 45세,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47세, 오윤 40세, 류인 43세, 구본웅 47세, 이인성 38세….

불꽃 삶으로 예술과 인생을 고민하다 미술사에 족적을 남기고 떠나간 화가들 중 요절 또는 단명한 경우가 의외로 적지않다. 그런 화가들의 사연을 모은 신간의 저자는 '한정된 에너지를 순식간에 고갈시키고 행복하게 파산한 화가들.…(창조적 에너지를) 완벽하게 소모시킬 때 비로소 자의식을 완성하는 숙명을 타고났기' 때문에 그들이 단명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독선과 광기로 세계와 불화하며 시대를 접수하고 거침없이 예술에 순교했다는 점에서 저자가 추린 12명은 닮은 꼴이지만 각각의 삶의 모습과 구체적인 사연들은 조금씩 편차를 보인다.

가령 키가 1m50㎝에도 미치지 못했던 곱추여서 '한국의 로트렉'으로 불렸던 손상기(1949∼98)의 경우 저자는 생활고를 이겨내지 못한 아내의 가출과 그에 따른 좌절, 재혼 등 굴절된 가정사에 주목했다. 손상기는 첫번째 아내에게 의처증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지녔지만 끝내 자유롭지 못했던 불구에서 오는 열등감, 고향 여수의 원색 바다, 지방대학 출신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 사랑의 실패 등을 절박함으로 녹여낸 손상기는 공작도시(工作都市) 시리즈를 통해 명료한 조형세계를 구축했다.

나혜석(1896∼1948)과 최욱경(1940∼85)은 여성에 대한 편견에 도전했던 선구자로, 윤두서(1668∼1715)와 오윤(1946∼86)은 시대와 불화했던 천재로 분류된다. 안정된 문장, 그러나 물기 그득한 서정적 문체로 읽는이의 삶을스스로 되돌아 보게 하기도 한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