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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마당으로 끌려나가 시해당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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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1851~1895)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침실 안에서 시해된 것이 아니라, 뜰로 끌려나가 칼에 찔려 죽었다는 기록이 나왔다.

13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일본 외무성 부설 외교사료관에서 최근 찾아낸 기밀문건 '한국 왕비 살해 일건(一件) 제2권'에 수록된 보고서 사본을 공개했다. 당시 일본의 경성 주재 일등영사 우치다 사다쓰지(內田定槌)가 을미사변 직후 직접 현장을 조사한 뒤 사건 발생 후 석 달이 채 안된 1895년 12월 21일 본국에 진상을 보고한 내용이다.

보고서에 있는 경복궁 내부의 세밀한 평면도에 따르면 1895년 10월 8일 새벽,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으로 난입한 일본인들이 경회루 왼쪽을 지나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 고종과 명성황후의 침소가 있던 건청궁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황후를 찾아내 장안당과 곤령합 사이 뜰로 끌고와 시해했으며, 황후의 시신은 곤령합의 일부인 동쪽 건물(옥호루)의 방안으로 잠시 옮겨 놓았다가 건청궁 동쪽의 인공산인 녹산 남쪽에서 불태웠다고 기록돼 있다. 시해 지점은 고종의 처소인 장안당에서 10m 떨어진 뒷마당이었다.

이 교수는 "실내가 아닌 궁궐 마당에서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해됐다는 것은 당시의 상황이 자객에 의한 암살이 아니라 군사작전과 다름없는 궁성 점령 사건이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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