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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보다 댄스가 진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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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3면

청룽(成龍) 하면 영화팬들은 금방 '코믹 액션'을 떠올린다. 때론 바보스럽고 때론 순진하고, 그러면서 거짓말처럼 현란한 쿵후 연기를 해대는 걸 보노라면 한편의 만화를 보는 듯하다. 데뷔 초기의 '취권''사권'은 물론이고 1980년대 인기를 모았던 '폴리스 스토리''러시아워' 시리즈가 모두 그렇다.

그런 청룽이 미국 시장을 노리고 대변신을 했다. 자칭 세계 최고의 병기(兵器)라는 턱시도(남성용 정장 야회복)를 입게 된 주인공의 맹활약을 그린 액션코미디 '턱시도' 에서 신세대 섹시스타로 떠오른 제니퍼 러브 휴이트와 손발을 맞춘 것이다. 이 작품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청룽을 염두에 두고 기획했다. 그가 '턱시도'의 다음달 개봉을 앞두고 최근 홍콩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났다.

청룽은 40대 후반답지 않게 장난꾸러기 기질이 많았다. 인터뷰 석상에 앉자마자 '와∼'하는 기합을 지르며 갑자기 두 손으로 탁자를 탁 쳤다. 그러면서 유창한 한국말로 "영화 좋아요?"라고 물었다. 주객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기자들이 "좋다"고 대답하자 청룽은 고개를 내저었다. 무언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청룽은 자문자답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번 영화는 예전과 많이 다르다"며 "다음엔 아이들과 함께 노래 부르는 뮤지컬을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능수능란한 말솜씨엔 '턱시도' 홍보를 위해 미국에서 20일 동안 4백32번의 인터뷰를 했다는 뒷심이 묻어나왔다.

청룽은 "이번 액션이 다른 어떤 영화보다 힘들었다"고 말했다. "과거엔 몸과 마음이 함께 붙어다니는 액션이었는데 이번엔 '턱시도 모드'에 따르다 보니 두 개의 액션을 하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영화 속 턱시도에는 어깨를 치면 전 자동으로 반응하는 방어시스템을 비롯해 '문어발식 빨판 손', 시속 1백㎞로 달리는 인간 탄환 기능 등이 있다. 다기능 스와치 시계를 누르면 저격수·파괴·스파이더 맨·특공무술·댄스 모드 등 별의별 초능력을 다 발휘할 수 있다.

청룽 역시 턱시도를 입으면 구사해야 하는 액션에 맞춰야 하는 게 껄끄러웠던 모양이다. "앞으론 홍콩과 미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기계 액션'과 '사람 액션'영화를 번갈아가면서 찍겠다"고 했다.

온몸으로 액션 연기를 해왔던 청룽에게 할리우드 액션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촬영기법이 발전돼 액션 하나하나를 나눠 찍기 때문이다. 밧줄로 몸을 감고 빌딩 옥상에서 악당들과 맞붙는 장면을 찍을 땐 청룽이 OK 사인을 낸 케빈 도노번 감독을 설득해 무려 37번이나 연속 촬영을 했다고 한다.

청룽은 "대역 없이 모든 액션을 하겠다는 약속을 이번에도 지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액션 신보다 제니퍼 러브 휴이트와 스텝을 맞춰야 하는 댄스 신에 진땀을 흘렸다는 조크도 잊지 않았다. 그는 '턱시도'의 흥행에 상당한 기대를 보였다. "20년을 기다리면서 미국 시장을 조금씩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1990년대 말 '홍번구'로 할리우드의 문을 두드려 대박을 터뜨렸다. 미국 현지에서 올 로케이션했던이 영화는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단숨에 그를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번에 스필버그 감독이 청룽에게 손을 내민 것도 흥행 가능성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영화시장인 미국은 사업가 기질이 있는 그에게 항상 먹음직스러운 '빅 파이'였다. 그는 영화사인 '미디어 아시아'의 지분 20%를 갖고 있고, 홍콩에 일본·중국 식당 등 다양한 사업체를 갖고 있다.

청룽은 중국과 동남아에 불고 있는 한류(韓流)를 따뜻하게 보고 있었다. 그는 "'엽기적인 그녀'와 '가을동화''겨울연가'를 모두 봤다"고 했다. 두 손으로 눈물을 닦는 시늉까지 하면서 "뻔한 스토리지만 정성껏 만들어 마음에 와닿았다"고 평가했다.

충고도 빼놓지 않았다. "한국 영화를 찾는 사람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에 놀러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한국풍(風)'이란 트렌드를 유지한다는 소신이었다(청룽은 한류를 한국풍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우스꽝스런 힙합 춤을 추면서 "피자와 햄버거를 먹고, 팝 뮤직을 듣고, 영어로 된 책과 TV 프로그램을 찾는 사람에게 무슨 나라 영화가 좋겠어요"라고 반문했다. 한국 배우의 할리우드 진출에 대해서도 "언어와 문화의 장벽를 뛰어넘어야 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의 한국어 실력은 듣던 것보다 훌륭했다. "지금,한국 추워요"라는 인사말은 물론 "섹스 신은 왜 안 하느냐"는 질문에 "그러면 아이들에게 나쁜 사람 돼요"라는 대답도 한국말로 해냈다. 자리를 옮겨 점심을 먹는 자리에선 70년대 초 한국에 와 2년 가량 살았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장발족' 단속에 걸려 파출소에 끌려갔는데 한국말을 잘 해 외국인이라고 믿어주지 않더라는 이야기,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여자를 때리는 남자를 말리다가 싸움을 벌인 일화를 '영어 절반, 한국어 절반'으로 몸짓 연기까지 섞어 구수하게 늘어놓았다. "한국에 가면 날 보고 성룡이라고 하는데 기왕이면 '재키 찬'이라고 불러주세요"라고도 했다. 그러다 흥이 났는지 "한국 아가씨와 한참 연애하면서 한국말과 노래를 배웠다"며 '사랑해'를 흥얼거렸다. 청룽은 지금도 육개장과 김치를 찾을 때가 많다고 한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yas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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