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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벤처 투자시장 죽어 합병·매각 쉬워야 성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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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7면

"벤처란 잡초다. 따라서 망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SK㈜ 사장을 갑작스레 사임하고 벤처솔루션스를 창업한 유승렬(52·사진)사장은 최근 코스닥시장의 폭락사태와 벤처기업들의 경영난 등은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劉사장은 대기업 전문경영인의 경험을 살려 벤처회사의 자금조달과 마케팅·합병·경영자문 등을 해주고 있다. 劉사장의 벤처 경험담을 들어봤다.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수준을 평가한다면.

"찾아오는 벤처업체 10개 중 9개는 수준미달이다. 지금까지 70∼80개 회사를 만났지만 10개 회사만 맡아 일을 봐준다."

-벤처기업을 하기에 우리나라 환경은 어떤가.

"최근처럼 소비가 주도하는 경제환경에선 벤처가 성장하기 어렵다.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으면서 기업간 거래되는 투자시장이 죽었다. 기술벤처들은 기업투자 시장이 있어야 살 수 있는데 지금은 시장 자체가 나쁘다."

-정부는 벤처기업 육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지 않는가.

"정부가 벤처를 미래 성장기업으로 정의하며 육성하고 있는데 이때문에 왜곡이 생기고 있다. 미국에는 수백만개의 벤처기업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나스닥에 상장되거나 성공하는 기업은 전체의 1%에도 훨씬 못미친다. 이처럼 벤처란 망하는 게 당연하고, 어쩌다 운좋은 한 두개가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런 벤처생리에 거슬러 마치 영재처럼 선발해 모두 지속적으로 육성하려다 보니 무리가 따르는 게 당연하다."

-벤처가 활성화될 수 있는 시장환경이란 어떤 것인가.

"기업끼리 사고파는 시장이 활성화돼야 한다. 벤처는 합병·매각이 자유로워야 성장한다. 그런데 우리는 대기업이 벤처를 합병하려고 하면 언론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나서 비난여론을 조성해 어렵다. 코스닥도 진입·퇴출이 좀더 자유로워야 한다. 한마디로 벤처투자 시장이 좀더 개방돼야 한다."

-요즘 코스닥시장이 폭락해 시름이 깊은데.

"코스닥은 거래소와 다르다. 투자자들은 고위험-고수익(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이라는 기본적인 인식을 갖고 시장에 들어와야 한다. 위험을 줄이려면 분산투자를 해야 한다. 코스닥측도 희망이 없는 기업들은 즉시 퇴출시켜야 한다. 고름이 새 살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벤처가 흔들리면서 벤처회의론도 나오고 있는데.

"벤처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스타(star)급 기술이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것은 빨리 죽는다는데 있다. 그만큼 기술의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자금력 있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뒤 전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오너의 의지나 기왕 투자한 자금때문에 쉽게 정리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부실이 커지고, 국민경제에 부담이 된다. 반면 벤처는 실패해도 규모가 적기 때문에 국민경제에 타격이 작다는 이점이 있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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