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산업 구조개편 정치적 합의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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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의 세계 경제 침체를 극복하는 길은 지속적인 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는 것 외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서도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는 국내의 정치 현실은 심히 우려할 만하다. 자칫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아 지난 외환위기 직전의 상황이 재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국민의 정부 5년이 마무리 단계에 있지만 국민의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4대 부문의 개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래도 기업·금융 부문의 구조개혁은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공기업 민영화를 비롯한 공공부문의 구조개혁은 다른 부문에 비해 실적이 저조하다.

이처럼 공공부문의 구조개혁이 지지부진한 것은 개혁의 주체인 정부가 자기 조직을 스스로 구조조정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과감하게 행동에 나서지 못한 탓도 있다. 그러나 더 큰 원인은 공공부문 발전의 비전을 제시하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노사간 갈등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에 있다.

정부는 에너지 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들 산업의 구조를 개혁하려는 노력을 벌여왔다. 그 일환으로 전력산업의 구조개편을 추진한 데 이어 가스산업 구조개편에 필요한 관련 법안을 지난해 11월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 법안들은 국회에 제출된 지 1년이 다 되도록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히 대선을 불과 두달 앞둔 정치권의 심한 눈치보기 때문에 또다시 해를 넘길 것으로 우려된다.

가스산업의 구조개편은 에너지 대부분을 해외에서 사다 쓰고 있는 우리 경제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구조개편의 궁극적 목적은 다수의 사업자를 시장에 참여시켜 경쟁하도록 함으로써 소비자에게 보다 싼값과 좋은 서비스로 가스를 공급하는 데 있다.

가스산업 구조개편은 세가지 이유에서 요구된다. 첫째 중장기 가스 수급계획상 추가적인 액화천연가스(LNG) 도입이 필요한 상황에서 보다 싼값에 가스를 수입하기 위한 경쟁체제를 구축하는 제도적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전력산업의 구조개편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가스산업의 구조개편을 미룰 경우 적정 에너지 믹스, 원가절감 등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곤란하다. 마지막으로 가스산업 구조개편은 우리 경제의 대외 신인도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우리 스스로 대내외에 약속한 공기업 구조개혁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을 경우 국가 신인도가 하락하고 이에 따라 외국인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가스산업 구조개편은 통상 10년 이상이 걸리는 장기 과제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관련 법안의 입법이 계속 미뤄질 경우 관련 공기업의 노사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미래 불확실성이 증폭돼 가스산업 전반의 재도약과 발전을 기약하기 곤란하다. 일부에서 제기되는 구조개편의 문제점들은 대부분 추진과정 상의 문제점들로서 구조개편을 추진하면서 순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국민의 정부 마지막 해인 올해에 공공부문 구조개혁의 마무리 차원에서 가스산업 구조개편 관련 법안의 입법을 완료해 구조개혁의 기본적 틀과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정치권은 우리나라 가스산업의 장기적 발전의 초석을 마련하기 위해 조속히 법안의 심의를 시작하고 정치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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