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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오만한 바르셀로나 … 무능한 주최측·프로연맹 … 우롱당한 한국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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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 2일 방한한 바르셀로나 간판 공격수 리오넬 메시(사진)에게 기자가 한국을 방문한 인상을 물었다. “자느라 (비행기 창문으로) 본 게 없어서 할 말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음 날 오후, 바르셀로나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은 “컨디션을 고려해 K-리그 올스타와의 경기에 메시를 출전시키지 않겠다”고 말했다. 훈련이 끝난 뒤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믹스트존 인터뷰를 거부한 채 숙소로 돌아갔다.

국내 축구팬은 세계 최강 바르셀로나의 방한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팬들의 기대는 실망을 넘어 분노로 바뀌었다. 이번에 온 바르셀로나는 반쪽짜리 팀이었다.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스페인 대표팀의 핵심 멤버 8명은 휴식을 이유로 참가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메시마저 뛰지 않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축구팬들의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다급해진 주최 측은 3일 밤 바르셀로나 숙소로 찾아가 구단 관계자들을 설득한 끝에 겨우 메시의 출전 약속을 받아냈다.

우여곡절을 겪은 올스타전은 예상대로 썰렁했다. 4일 서울월드컵경기장(6만8000명 수용)의 관중은 3만2581명에 그쳤다. K-리그 골수팬들이 경기를 외면해 응원소리 없는 경기장은 적막했다. 바르셀로나는 선발 11명 중 6명을 B팀 선수로 채웠다. 바르셀로나 B팀은 10대 후반~20대 초반으로 구성된 2군 팀으로 스페인 3부 리그에 출전하고 있다.

메시는 단 18분만 뛰었다. 한국 여론을 의식한 듯 전반 29분 교체로 투입됐으나 2골을 넣고는 후반전에 출전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의 과르디올라 감독은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벤치를 지켜 눈총을 받았다.

FC 바르셀로나 방한 경기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며 끝이 났다. 프로축구연맹은 이 경기를 위해 리그 일정까지 바꿨다. 자체 올스타전으로는 흥행에 성공할 수 없는 K-리그의 고육책이었다. 선수들은 소속팀 경기 준비를 뒷전으로 한 채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상대는 반쪽짜리 팀이었고, 그나마 우리가 경기를 구걸하는 모양새가 됐다.

이번 경기를 주최한 마케팅사 ‘스포츠앤스토리’는 바르셀로나 초청비로 230만 유로(약 32억원)를 지불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계약서상 허점이 많아 끌려 다니기만 했다는 후문이다.

프로연맹의 미온적인 대처도 문제다. 소속팀의 양해를 얻어 한국을 대표하는 팀을 만들었으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다. 연맹은 주최 측의 무능함이 드러나 ‘메시 출전 불가’ 통보를 받고서야 부랴부랴 움직였다.

앞뒤 재지 않고 흥행을 노리는 국내 스포츠 마케팅계의 조급증과 이에 편승해 수익만을 추구한 프로연맹의 행태는 득보다 실이 많은 결과로 돌아왔다.

바르셀로나는 B팀 위주로 경기를 운영했지만 단일팀의 이점을 활용해 K-리그 올스타팀에 5-2로 승리했다.

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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