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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구? 난 프로일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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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0면

"소주 한잔이던 주량이 어느새 한병으로 늘었어요."

MSD코리아의 남성전용 상품인 탈모 치료제와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는 조정열 이사. 현장을 발로 뛰며 틈틈이 부하 직원들을 다독거리다 보니 자연히 주량도 늘었다고 한다. 이제 퇴근시간이면 남자 부하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소주 한잔'을 권할 정도다.

하지만 주고객이 보수적인 남자 의사들인 만큼 어려움도 많았다. "의사들을 찾아가면 같이 간 남자 직원을 상사로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제가 찾아가면 자신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지요."

趙이사의 팀원들은 남성 직원뿐 아니라 미혼의 여성 직원들도 가방 속에 남성 성기 모형을 항상 들고 다닌다. 약품의 효능을 정확히 설명하기 위한 도구다. "저나 부하 직원들 모두 처음엔 쑥스러워 했어요. 가족들도 '그런 걸 꼭 들고 다녀야하나'며 눈을 흘기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상사의 입장이 되어보니 전에는 못보던 여직원들의 단점도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조직 내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문제를 해결하거나 훌훌 털어버리는 능력이 남성에 비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여성들이 배워야 할 자질이죠."

글=조민근·사진=주기중 기자 jming@joongang.co.kr

기업에서 '별'(임원)을 다는 여성이 늘고 있다. 비즈니스 분야에 여성들이 활발하게 진출하면서 여성 상사 밑에 남성 부하직원이 일하는 모습도 이제 낯설지 않게 됐다. 남성 중심의 직장 문화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컨설팅회사·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 임원 세명을 만나 현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겪었던 애환과 최근의 직장세태, 후배들에게 주는 조언 등을 들어봤다. 출신학교도 직장도 맡은 업무도 다르지만 남성 중심 사회에서 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마침내 꿈을 이룬 그들이기에 일에 대한 자부심, 마르지 않는 도전 정신만은 한결같이 지니고 있었다.

"자네라면 누구를 키우겠나."

이숙영 상무는 첫 직장의 상사에게 들었던 이 한마디를 아직 잊지 못한다. 남성 직원에 밀려 대리진급에 실패한 뒤 항의하는 그녀에게 돌아온 반문이었다. 어차피 남자들보다 오래 직장생활을 하지는 못할 것 아니냐는 뜻이었다. 얼마 뒤 그녀는 LG-EDS(현 LG CNS)로 자리를 옮겼다. 월급은 전 직장보다 적었지만 "적어도 성(性)으로 차별하지는 않겠다"는 회사 측의 말에 주저하지 않았다고 한다. 李상무는 이후 공공 시스템사업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였던 국세청 통합전산망사업의 데이터베이스 설계를 주도했으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특허청·재경부·철도청 등의 굵직굵직한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물론 순탄한 길만은 아니었다.

"팀장이 여성이라면 처음에는 대부분의 고객들이 믿지 않습니다. 야근도 못할텐데 기한 내에 일을 끝낼 수 있겠느냐는 식이죠. 하지만 일을 끝내고 '정말 깔끔하게 처리했다'며 고객이 만족해할 때 그 동안의 섭섭함은 한꺼번에 날아가 버립니다."

'여성 상사-남성 부하'에 대해서는 "좋은 점이 더 많다"고 말한다. 남자 임원들에게는 쉽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도 李상무에게는 격의없이 상의하는 남자 직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자녀로는 딸만 둘을 뒀다. 李상무는 딸들에게도 자신의 길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젊고 합리적이라는 컨설턴트들에게조차 아직까지 여자 보스가 편한 존재는 아닌 것 같아요."

올해 초 글로벌 컨설팅 업체 한국지사에서는 처음으로 여성 파트너에 오른 베인&컴퍼니의 김연희 부사장.

모델로 삼을 만한 선배가 없다는 것은 그를 비롯한 '최초'에 따라붙는 숙명이다. 金부사장도 이를 알기에 "항상 내 길을 스스로 개척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다짐하듯 말했다. 컨설팅도 서비스업인 만큼 여성이기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있었다.

"공식 자료로는 몇달이 걸려야알아낼 수 있는 고객 회사의 문제를 남자 동료들은 고객들과의 하루 저녁 술자리에서 파악해 내기도 했습니다. 정말 난감했죠."

하지만 최근 컨설팅업계에 여성들이 대거 진출하면서 이같은 문화도 차츰 변화하고 있다.

3년 전 베인&컴퍼니의 여성 컨설턴트는 단 2명뿐이었지만 지금은 16명으로 늘었다. 매킨지의 경우에도 최근 1년 새 신입 컨설턴트 수에서 여성이 남성을 추월했다.

여성 후배들에게 金부사장은 "일과 가정 중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에 맞춰 모든 것을 결정하라"고 조언한다. 일과 가정 모두에 충실한 이른바 '수퍼 우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숙영 상무 "터프해지는 것을 두려워 마라. 당신을 여성으로서 배려하는 직장 상사는 실제로는 당신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李상무는 평소 각 팀장들에게 "여직원들에게도 남성들과 똑같이 일을 시키라"고 주문한다. 그녀 또한 직장생활 중 지방 출장을 마다해본 적이 없다. 인천신공항 프로젝트 때는 출근 시간에 맞추기 위해 자녀와 남편이 모두 잠든 오전 4시에 집을 나서곤 했다.

▶김연희 부사장 "길게 보고 남보다 앞선 선택을 하라.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면 과감히 도전하라."

金부사장이 경영대학에 입학했을때 2백75명의 입학생 중 여학생은 단 9명뿐이었다. 동기 여학생들이 대기업·은행을 선택할 때 그녀는 홀로 컨설팅업을 택했다. 한발 앞선 선택은 조직 내에서 언제나 그녀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조정열 이사 "좀더 구체적으로 꿈을 꾸라. 먼 미래보다는 5년뒤, 10년 뒤의 내모습을 항상 머릿속에 담고 자신을 관리하라. 간절히 원하는 사람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

趙이사는 직장 초년병 시절인 10년 전 기업의 마케팅 부문 이사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여러차례 직장을 옮기면서도 마케팅이라는 업무의 연속성은 이어갔다. 그녀의 목표는 10년 내에 CEO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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