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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지구는 돈다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16세기의 한 대학 강의실. 무대 아래서는 형형한 눈빛을 한 젊은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경사면에서의 구체의 운동'에 관해 열에 들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무대 위에는 대여섯명의 학생이 튼튼한 로프와 공을 손에 쥐고 있다. 이들은 갈릴레이가 "경사면의 각도가 30도일 때 공이 어떻게 운동하는지 알아봅시다"라고 말하면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로프를 연결한 다음 그 위로 공을 굴린다. 이런 식으로 각도를 달리하면서 공의 운동을 설명한다.

이윽고 갈릴레이의 강의가 끝나면 음악이 울려퍼지고 무대 위 학생들은 로프와 공을 들고 안무를 시작한다. 공중제비를 돌고 물구나무를 서고 로프를 건너뛰면서 한바탕 흥겨운 춤판을 벌이는 것이다. 현재 뉴욕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오페라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한 장면이다. 이 오페라에는 이 밖에도 갈릴레이가 천체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끌어내는 과정, 갈릴레이가 저서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2대 세계 체계에 관한 대화』에서 다룬 내용의 일부가 소개된다.

예술과 과학은 물과 기름의 관계다. 보통 사람에게 과학 하면 어렵고 골치 아프고 이해 불가능한 대상으로 비춰지기 일쑤다. 또 수학이나 물리학은 논리적이고 분석적이어서 감성을 울려야 하는 예술과는 맞지 않는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작가나 예술가들은 과학적 소양이 젬병인 경우가 많고 심지어 과학에 문외한이어야 예술적 상상력이 풍부한 것처럼 오해하기도 한다.

물론 과학을 끌어들이는 예술 장르로 SF소설과 SF영화가 있다. 하지만 SF에서 다루는 과학은 아직 입증되지 않은 가설적인 내용이거나 현재의 수준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미래의 기술을 취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뷰티풀 마인드' 처럼 수학자나 과학자의 생애를 다루는 영화나 공연물도 과학적인 사실을 본격적으로 다루기보다 천재로서의 과학자가 재능이 비범해 겪어야 하는 고통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는 과학을 본격적으로 취급하는 공연이 늘고 있다. 브로드웨이에서 상연 중인 '증명(Proof)'은 수학 천재를 아버지로 둔 딸과 제자가 그가 남긴 수학노트에 적힌 공식의 열쇠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중간중간에 딱딱한 수학이야기가 나옴에도 인기가 높아 장기 상연 중이고 올해 토니상도 수상했다.

역시 토니상 수상작인 '코펜하겐(Copenhagen)'은 양자역학의 창시자인 덴마크의 닐스 보어와 독일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주인공이다. 2차 대전 중 각각 독일과 미국을 위해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했던 두 사람이 코펜하겐에서 만나 원폭과 세계의 미래에 관해 나눈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증명 끝'을 뜻하는 'QED'는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강의를 토대로 한 1인극이다. 파인만은 재치있는 문장으로 현대물리학을 쉽게 풀어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데 기여했던 인물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작곡자인 필립 글래스는 이미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으로 유명하다. 시카고 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공부한 그는 "대학 시절 많은 수학적 증명과 실험에 단련됐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이번 오페라를 작곡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연출자인 메리 짐머만은 "공연의 주인공이 경찰이라면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경찰의 업무를 취재하듯이 과학자가 주인공이라면 과학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이 얼마나 지속될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현대과학은 너무나 추상적이고 이론적이 돼 버려서 상식적인 교양 수준으로 전달하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영기 기자

ley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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