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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치 前 현대증권회장 단독 인터뷰]"공식 대출이면 내가 몰랐겠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은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중심가 한 병원에서 치과 치료를 받고 나오다 기자와 만나 한 시간 넘게 '현대상선 4억달러 대북 지원설'과 관련한 얘기를 나눴다. 그는 넥타이를 매지 않은 와이셔츠 차림이었으며, 콜택시를 타고 병원에 왔다.

-현대가 4억달러를 비밀리에 북한에 지원할 만한 이유가 있었나.

"내가 현대그룹의 자금 총책임자였고 대북 사업에 깊숙이 관여했다고 하나, 그런 돈 쪽은 아니다. 그룹 밖에서 아는 것과 달리 대북 사업 자금은 정몽헌 회장이 거의 혼자 주무른 것으로 보면 된다. 당시 전문경영인으로서 한계를 느꼈다. 오너가 이거 하라면 이거 하고 저거 하라면 저걸 했다. 전문경영인의 '애환가'다. 김충식 전 사장 등도 비슷한 처지였다. 나도 그저 심부름하면서 국제금융 분야를 도맡아 외국인 투자 유치 등을 했다. 그 같은 큰 돈에 관해서는 오너(鄭회장)만이 결심해 움직일 수 있는 구조다.

청와대 등 정부 관계 유지도 마찬가지다. 분명한 것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아들인 鄭회장은 개인적으로 돈을 쓸 사람이 아니다. 현대그룹은 당시 모든 계열사가 어려웠다. 따라서 현대상선 4천억원의 대출금이 북한에 간 게 아니라면 정황으로 봐서 계열사를 지원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도 산업은행에서 그렇게 많은 돈이 (현대상선을 통해)현대그룹으로 들어왔는지는 몰랐다. 정몽헌 회장과 매일 만나 빚 걱정을 했기 때문에 그 돈을 공식적으로 대출받았다면 내가 알았을 것이다. 2000년 당시 현대는 70조 원이 넘던 빚을 20조 원이나 줄였지만 여전히 50조원이 남았었다. 더구나 1년 미만의 단기 자금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그룹 차원에서는 한달에 평균 4조 원 이상을 막아야 하는 처지였다."

-李전회장은 鄭회장과 함께 남북 정상회담 성사 직전에 급박하게 중국 등을 오갔는데, 현대가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만남을 사전에 주선하지 않았나. 청와대 박지원 수석 등과도 긴밀한 협조를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박지원 수석이 나같은 기업인들을 왜 접촉하겠나. 나는 고인이 된 정주영 명예회장과 鄭회장이 하라는 일만 했다. 대북 사업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鄭회장이 주도적으로 한 것으로 보면 된다."

-현대상선뿐만 아니라 李전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던 현대증권이 북한에 비밀자금 전달 창구 역할을 했다는 얘기도 있다.

"증권을 통해서는 한푼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증권사는 돈의 움직임에 대해 금융감독원 등에 일일보고를 하는데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현대상선 등 다른 계열사 기업은 잘 모르겠다."

-현재 정몽헌 현대회장과 김충식 전 사장도 LA에 머물고 있다. 현대상선의 4억달러 대북 지원설의 열쇠를 쥔 인물들이 모두 이곳에서 상당 기간 함께 있었던 걸로 확인되는데, 혹시 '입맞추기 대책 모임'을 했나.

"현대 쪽 세 사람이 동시에 이곳에 있다는 건 우연의 일치다. 정말 치아가 아파 병원에 왔다. 鄭회장은 뭐가 섭섭한지 2년 넘게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다. 현대상선의 4천억 원 대출 건이 뭔지, 4억달러 대북 지원 건이 뭔지 모른다. 金전사장과도 당시 대북 사업 추진 의견이 달라 서로 소원했었다. 金전사장은 나와 鄭회장 등이 추진하는 대북사업을 못마땅해 했었다. 그와는 그때나 지금이나 연락을 하지 않고 산다. 지금은 세 명이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鄭회장이 뉴욕에서 이곳에 온 지난 1일에 맞춰 李전회장이 텍사스에서 느닷없이 날아왔고, 金전사장도 미리 와 있었던 게 아닌가. 더구나 치아 치료를 하러 갑자기 비행기로 세시간 거리인 LA까지 온 것이 이상하지 않나.

"큰아들이 있는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집을 임대해 2년 가까이 살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6개월 전에도 이곳에 사는 둘째 아들집에 들렀다가 치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어 이번에 다시 찾아왔을 뿐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신의주 경제특구의 양빈 장관 후임으로 박태준 전 총리 등과 함께 북측에서 거론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2000년에 방북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과 경제문제를 심도 있게 얘기한 적은 있다. 당시 북한에 증권회사를 차리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金위원장이 자본주의 경제에 무척 관심을 가졌다. 북한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현대가 도와주고 조언해 줄 것을 부탁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신의주 특구 장관 제의를 받은 일은 없다.

金위원장은 그때 이미 일본과 수교를 하고 받을 수 있는 경협 자금을 거론해 깜짝 놀랐다. 그는 일본에서 큰 돈이 들어오면 어디다 어떻게 써야 할지 남한의 경험을 모델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남한이 일본 돈으로 세운 포항제철(현 포스코)이 경제 부흥에 기폭제가 됐던 것처럼 북한도 이 돈으로 제철소에 투자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어 金위원장은 그 당시 북한의 한 제철소를 방문해 관계자들한테 시설을 현대화하는 데 얼마나 들 것 같으냐고 물었다고 했다. 그러자 제철소의 한 관계자가 20억달러 정도가 든다고 해서 자신이 직접 이것 저것 따져 계산해 보니 비용을 10분의1(2억달러)로 줄여도 될 것 같다고 얘기해 줬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金위원장은 만약 현대에서 계산한다면 자신보다 더 경제적으로 투자비를 아낄 수 있지 않느냐고 묻기도 했다.

특히 현대 측은 金위원장에게 수리조선업을 적극 권했다. 북한의 경제 실정과 지리적 여건을 따져보면 수리조선업이 유망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金위원장은 수리조선업보다 소형 자동차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후 鄭명예회장은 북한에 소형 자동차 공장 건립을 은밀히 추진했다. 그러자면 鄭명예회장의 중공업 지분을 팔아 현대자동차 주식을 취득해야 했다. 鄭명예회장이 북한에 소형 자동차 공장을 짓고 사업을 크게 벌이려면 자신이 직접 현대자동차의 대주주가 되는 게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룹 내부에서도 현대자동차 같은 계열사엔 대북 사업에 부정적인 사람이 많아 이런 걸림돌을 사전에 제거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위한 鄭명예회장의 특단조치였다. 그런데 이런 鄭명예회장의 시도가 몽구·몽헌 회장 형제간 재산 싸움인 '왕자의 난'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나서 동생인 정몽헌 회장이 형인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 몫을 다 빼앗으려 한다며 난리를 부린 것이다. 사실은 모두 김정일 위원장과 대북 사업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현대와 鄭회장은 지금 대북 사업으로 인해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 특히 현대상선은 멀쩡한 기업이 대북 사업에 참여하는 바람에 망가졌다는 얘기까지 듣고 있는데. 현대의 대북 사업을 주도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보는가.

"요즘 한국 신문은 거의 보지 않고 산다. 현대상선 4억달러 북한 지원설 등도 주변 사람에게서 간접적으로 들어서 알았다. 현대는 결국 鄭회장 것이다. 오너가 잘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정주영 명예회장이 사업가적인 기질이 있다고 인정한 아들이었다. 자기 재산이니 자기가 잘 알아서 할 것이다. 나는 원래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아서도 그렇지만 요즘은 가족들과 잘 지내고 있다. 텍사스에서는 평일에 혼자 골프장에 가기도 한다. 이곳 노인들과 한 조를 이뤄 골프 게임을 하기도 한다."

-현재 영어와 금융 공부를 한다고 들었는데.

"나는 현대증권에 있을 때 '바이코리아' 돌풍을 일으켰다. 당시 외환위기로 한국 기업들이 너나할 것 없이 부도 직전으로 몰릴 때 숨통을 트게 했다. 지금도 내가 하는 공부가 언젠가는 한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LA=김시래·유재민 기자

sr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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