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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영 금감위원장의 처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현대상선에 대한 문제의 4천억원 당좌대월은 금융관행이나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안가는 의혹투성이 대출임이 드러날 만큼 드러났다. 주채권은행과 상의도 없이 4천억원이라는 거액을 신청 사흘 만에 담당임원의 전결로 내준 것은 물론이고 대출약정서에 현대상선 대표이사의 서명이 누락되는 등 대출서류들은 온통 허점투성이였다.

엄낙용 전(前)산은총재가 국회에 출석해 "대통령비서실장의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들었다"고 증언했고, 산업은행의 한 고위 간부 입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그 대출은 이상한 것이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대출 당시의 산은총재였던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계좌추적을 하면 4천억원의 행방이 쉽게 밝혀질 수 있는데도 "법에 어긋난다"며 그는 불가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출처리 과정의 의혹들에 대해 그는 "담당자의 실수다" "전결권자가 처리해 잘 모르겠다"고 답변을 피하는가 하면 엄낙용 전 총재의 증언에 대해 "당시 들은 루머와 사실을 혼동한 것 같다"고 일침까지 놓았다. 그러면서 "4억달러 대북 지원설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은 뭔가. 또 왜 이를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가. 대출 당시의 산은총재로서, 또 현 금융기관 감독 최고책임자로서 진실을 규명할 책임과 의무가 그에게 있다. 적잖은 전문가들이 현행법상 계좌추적의 길이 있다고 권고하고 있는데도 "현대상선은 해외거래가 많은데 밖에서 일어난 일을 무슨 재주로 알아보겠느냐"고 도리어 딴청이다. 4천억원 말고도 현대상선에 대한 대출이 1년 사이 배 이상으로 불어나는 등 특혜 의혹은 꼬리를 물고 있다. 더구나 한달 가까이 계속되는 의혹 시비로 국책은행 산은은 벌집을 쑤셔놓은 상태고 현대상선은 극심한 자금난에 빠져들고 있다고 한다. '정치공방'으로 치부하고 숨바꼭질 할 때가 아니다. 역사 앞에 진실을 밝히고 당당히 책임지는 공인으로서의 처신을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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