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외채 비중 換亂후 최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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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빌린 지 1년 이내에 갚아야 하는 단기외채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재정경제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단기외채는 5백15억달러로 지난해 말의 3백91억달러보다 1백24억달러(32%) 늘었다. 같은 기간 총외채는 1천1백77억달러에서 1천2백96억달러로 1백19억달러(10.1%) 증가했다.

올들어 8개월 동안 늘어난 총외채보다 단기외채 증가액이 더 많은 것이다. 이에 따라 전체 외채에서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도 39.8%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7년 12월(39.9%)이후 4년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커졌다.

◇단기외채 왜 늘었나=우선 외국은행 국내지점들이 본점에서 빌려온 단기 외화자금이 올들어 71억달러(76억달러→1백47억달러) 늘었다. 외국은행들이 국내 영업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기관의 단기외채도 지난 8월 말 1백59억달러로 올들어 36억달러 늘어났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신용도가 낮은 일부 은행들이 외국에서 돈을 꾸려다 보니 상대적으로 쉬운 단기차입을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은행들이 일본에서 금리가 낮은 단기 엔화자금을 들여와 국내 기업들에 빌려준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한은은 분석했다.

이밖에 민간기업들이 직접 해외 금융시장에서 외국 투자가들에게 빌린 단기외채도 지난 8월 말 2백9억달러로 올들어 17억달러 증가했다.

◇무엇이 문제인가=재경부 관계자는 "현재 외환보유액이 1천1백67억달러에 이르므로 외환위기를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단기외채가 장기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게 문제다.

97년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시발점은 종합금융회사들의 단기외채였다. 종금사들이 단기로 외국에서 빌려온 돈을 국내 기업들에 장기로 대출해줬다가 이를 회수당하면서 외화자금이 부족해졌었다. 97년 9월 말 9백81억달러였던 단기외채가 98년 11월에는 2백94억달러로 줄면서 국고가 바닥났던 것이다.

단기외채 비중은 외환위기 직전인 97년 9월 54.4%에서 98년 10월 19.4%까지 낮아졌다가 이후 상승세로 돌아서 2000년 1월 30%를 넘어선데 이어 현재 40%선에 육박하고 있다.

만기 3개월 이내인 외화부채가 같은 만기의 외화자산보다 많은 은행도 일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화자산이 제대로 회수되지 않거나 외채의 만기연장이 잘 되지 않을 경우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고려대 이종화 교수 등은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단기외채에 과다하게 의존할 경우 제2의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한은 관계자는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의 비율이 지난 8월 말 현재 44%로 외환위기 당시 7백%나 됐던 것에 비하면 훨씬 낮은 수준이지만 단기외채의 꾸준한 증가세에 대해선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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